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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ssue 예수께서 이 나라를 살리실 것이다. Up 최종편집: 11월9일(수) 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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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가 뉴스를 바꾼다
“구해주세요” 2,300통 생명의 편지


 역사 속에 역사하신 하나님. 주님의 기이한 행적을 보라. 영의 눈을 열어 본다면, 한민족은 복음을 받아들이기 이전과 이후로 갈라질 것이다. 

 마르틴 루터가 이끌어 낸 변혁의 불은 칼뱅을 거쳐 유럽을 태우고 영국에 번졌고, 잉글랜드 존 웨슬리의 경건운동은 메이플라워를 타고 온 청교도들을 통해 미국에 퍼졌다. 신대륙 풍요에 젖어간 건방진 양키들. 그들은 남북전쟁 시련과 1·2차 대각성 운동을 거치며 새벽이슬 같은 청년들로 전 세계에 선교사로 흩어졌다. ‘완전하신 말씀’으로 돌아간 남은 자들은 중국, 인도, 일본과 함께 조선을 찾았다. 

 선교사들, 종교개혁의 불을 품은 믿음의 영웅들. 그들은 가난, 질병, 전쟁의 절망 속에 빠져 있던 조선에 소망의 씨앗을 심는다. 나라가 기울던 때 영원(永遠)을 구하라 말했다. 예수를 만나면, 쇠락한 조선도 일어날 것이라 말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민족이 될  수 있다고 외쳤다. 

 장신대를 설립한 마펫(Samuel Austin Moffett, 1864-1939) 선교사는 1910년 6월 스코틀랜드 에딘버러에서 열린 세계선교대회(World Missionary Conference, the Edinburgh Missionary Conference)에서 이렇게 말했다.

“조선은 비기독교 국가 가운데 복음화되는 첫째 국가가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나의 기독교 국가, 하나의 영적 강대국(强大國)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두 달 뒤 한일합방으로 현실의 나라가 없어질 무렵, 거듭난 자들은 영적인 강대국 한국을 예언했다. 

 언더우드 선교사(Horace Grant Underwood, 1859-1916) 선교사는 1902년 2월 학생자원운동(SVM Student Volunteer Movement for Foreign Mission) 대회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지나온 발자취를 통해 우리는 약속된 미래의 환상(fantasy)을 봅니다. 나는 오늘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새 한국, 완전히 해방된 나라 곧 기독교 한국(A Christian Korea)을 분명히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이 나라가 강력하고 신명 나는 영향력의 손을 펴서 한편으로 중국으로 뻗고 다른 한편으로 일본으로 뻗어서 한국이 주변 나라와 손 잡과 세 나라가 하나의 그리스도 국가 권역을 형성해 영원히 어린양 예수를 높이기를 소망합니다. 만일 그때 우리가 여기에 없다면 천국에서 그 모든 것을 바라볼 것입니다(We, if not here, from there shall see it all. I shall be constantly watching)”

 마찬가지다. 을사조약 3년 전. 늑대 같은 열강에 침탈되던 시절, 경건한 이들은 완전히 해방된 새 한국, 기독교 한국을 외쳤다. 믿음의 영사(英士)는 보이는 것에 따라 행하치 않는다. 주님이 주신 감동을 따른다. 언더우드 역시 그의 편지에 나오듯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보이는 것은 그저 고집스럽게 얼룩진 어둠 뿐이던’ 조선에 1886년 고아 학교를 세웠다. 이 학교는 경신학교를 거쳐 1915년 연세대학교 전신인 연희전문학교로 발전했다. 

 그는 삶의 마지막 해인 1915년 4월 1일부터 1916년 4월까지 1년여 동안 2,300통이나 되는 엄청난 양의 편지를 썼었다. 1916년 11월 57세의 나이로 소천하기 몇 달 전까지 하루에 6.3통의 편지를 손으로 썼다는 것이다. 모두 조선의 영혼을 살려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어둠과 야음(夜陰)은 역사 속 주님의 자취를 지우려 한다. 이를 위해 카리스마로 행했던 인물을 하이에나 떼처럼 물고 늘어진다. 인본주의자들이 이승만을 못 잡아 먹어 안달복달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한민족 역사에 주님의 기이한 행적을 없애기 위함이다. 공산당에 의해 이승만처럼 공격받는 또 다른 인물 중 하나가 언더우드다. 애꿎은 언더우드 동상도 번번이 수모를 겪었다.

 연세대학교 내 세워진 언더우드 동상은 1926년 7월29일 처음 세워졌다. 동상은 두 차례 파괴돼 다시 세워졌다. 첫 번째는 일제, 두 번째는 6.25 당시 좌익세력. 일본의 천황과 김일성, 모두들 우상을 섬기는 자들이었다. 대한민국을 하나님 나라로 만들려 한 언더우드를 악신 들린 자들이 저주한 셈이다. 

 첫 번째 사고는 이랬다. 일제는 1942년 전쟁물자로 충당하기 위해 언더우드 동상을 무너뜨려 그 자리에 흥아유신(興亞維新) 기념탑을 세웠다. 태평양전쟁을 찬양하는 의미를 담아 대리석으로 깎아 뿌리를 박았다. 그 후 1948년 10월16일 이승만 대통령과 김구, 김규식 등이 참석한 가운데 새로운 동상의 제막식이 열렸다. 첫 번째 동상보다 크기는 작아졌지만, 모양은 같았다.

 동상의 두 번째 파괴는 6·25사변 중이다. 김일성은 미 제국주의와의 전쟁을 천명하며 연희전문학교를 서울의 중요 기지로 사용했다. 그리곤 남한 내 좌익을 동원해 “미 제국주의 주구의 상징”이라며 언더우드 동상을 밧줄로 묶어 쓰러뜨렸다. 

 6.25사변 직전엔 이런 참극도 있었다. 1949년 3월17일 언더우드 선교사의 며느리이자 당시 연희전문학교 명예총장 호러스 호턴 언더우드(H. H. Underwood, 원한경)의 부인 와그너 여사(Mrs. Ethel Van Wagoner Underwood)가 좌익 청년들에게 피살당했었다. 

 악랄한 자들 아닌가? 죽이고 도둑질하고 멸망케 하는 사단의 후예들이다. 
한반도 내 교회를 없애려 발악해 온 흑암은 언더우드와 그 제자 이승만을 저주하며 끝없는 거짓과 선동을 벌였다. 지금도 북한 교과서에 언더우드를 학살자로 회칠하고 주사파 좌익들도 틈만 나면 언더우드 동상 훼손을 시도한다. 어둠의 속성이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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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욱의 전체기사  
2022년 06월13일 23시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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