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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깨문 목사님의 탄생



 이념은 결국 마음의 문제다. 상처와 쓴 뿌리, 절망감·상실감·원통함, 해결되지 않은 숱한 마음의 질병은 세상을 보는 시선을 뒤틀어 버린다. 감사와 희락, 기쁨 대신 미움, 증오, 분노는 이 세상, 이 나라가 소위 모순에 가득 차 있다는 확신을 갖게 만든다. 나아가 이런 세상을 이끄는 가진 자, 있는 자, 형통한 자를 없애는 것이 정의라는 결론을 내리게 만든다. 유복한 삶을 누리게 된 뒤에도 재벌, 극우, 적폐 그리고 친일파 등 가상의 적들을 소위 ‘절대 악(惡)’으로 만든다. 사회주의는 이런 심장병 환자의 수요에 맞춤형 논리를 제공해준다. 증오의 철학인 탓이다.

 기독교인과 목회자 중에도 이른바 진보·좌파 성향이 의외로 많은 것은 이 때문이다. 도덕적 자부심, 영적인 허영심. 자신을 세상과 다른 순결한 자로 여기는 종교인들은 돈과 권력, 힘 있는 자들에 대한 본능적 경멸감을 갖고 있다. 세상 살며 받은 ‘상처’가 클수록 더 많이 갖고 더 많이 있는 자들을 깔보는 마음은 시기와 질투를 넘어 분노와 증오로 쌓여 있곤 한다. 

 이런 그리스도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사회적 ‘정의’의 실천이 아니다. 회개(悔改)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하고 이웃들을 사랑하지 못하게 하는 내 안의 죄를 버리는 것이다. 정작 죽여야 할 것은 미움·증오·분노, 절망감·상실감·원통함, 교만한 목이다. 그러나 진정한 회개가 없으니 천국은 임하지 않는다. 

 하늘로 통하는 심령의 천국이 없으니 지상의 천국을 꿈꾼다. 이를 위해 가진 자, 있는 자, 잘 풀린 인생에 대해 정의의 칼을 휘두른다. 선지자가 아닌 심판자가 되고 만다. 아무리 성경을 잘 알고 아무리 신령해 보여도 사람과 세상을 볼 땐 왼쪽으로 치우쳐버린다.  

 ‘대깨문’ 목사들은 그렇게 나온다. 사회주의·공산주의·민족주의 이데올로기는 나중에 들어간 논리다. 그들은 마음에 병이 들었다. 정의·공정·평등·평화·인권인 양 오진(誤診)돼 있지만, 실은 시기·질투·미움·증오·분노의 암이다. 영적인 나병에 걸린 자들의 눈에는 가련한 북한의 동족이 보이지 않는다. 열방의 족속과 이방의 잡족의 탄식도 들리지 않는다. 개혁의 복면을 쓴 이기적 한(恨) 풀이만이 의미를 갖는다. 상처와 쓴 뿌리, 자신의 죄를 죄로 보지 않은 당연한 결과다. 

 우파나 보수는 병들지 않았다 말하는 게 아니다. 소위 혁명, 실은 파괴와 해체에 대한 반발로 등장한 한국의 보수·우파는 구체적 이념, 틀을 갖춘 논리를 따르는 이들이 아니다. 스펙트럼도 다양하고 일반화하기도 어렵다. 그러나 이들도 미움·증오·분노에 잡혀 적대적 구호만 외치고 있다면 주님의 기적은 영원히 이뤄질 수 없을 것이다. 죄와 피 흘리며 싸워 이긴 자들, 그들이 마귀를 대적해 이기는 주님의 강력을 누린다. 

 다시 진보·좌파 목회자 문제로 돌아가 보자. 이들을 문제시하는 것은 집단적 세력을 이루는 탓이다. 그들을 잡고 있는 ‘견고한 진’이 개혁을 앞세워 실은 교회의 해체를 부르는 탓이다. 이들의 표면적 주장은 이렇다. ‘자본주의는 맘몬을 따르는 사악한 것이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부익부, 빈익빈 불의하고 불평등한 세상을 정의롭게 만들려고 노력해야 한다. 진보 정치 세력은 부조리한 대한민국을 바로 세우려는 것이었다. 거친 방법을 쓰고는 있지만 목적은 공정과 평등과 평화다. 차별금지법 같은 것도 음란한 이 세태의 문제일 뿐 문재인과 민주당 탓으로 돌리긴 어렵다’ 

 많은 그리스도인이나 목회자들은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 세대가 젊을수록, 소위 지식인 기질이 강할수록 더욱 심하다. 선교단체나 신학교도 그렇다. 별 생각 없어 보이긴 하는데, 대화를 깊이 해보면 실무자 성향은 자칭 진보인 경우가 태반이다. 이른바 ‘주의 종’ 가운데 60세 이전 세대라면 자칭 진보가 다수를 차지할 것 같다는 느낌도 받는다. 

 본인들은 아니라고 손사래 친다. 정치에 관심 없는 ‘복음적’ 시각 또는 ‘중도적’ 입장일 뿐이라고 강변한다. 그러나 이들은 언제나 미디어의 좌파적 선동에 넘어갈 준비가 돼 있다. 촛불시위가 터지면 기다렸다는 듯 아이들과 함께 광화문을 찾는다. 정치적 유행을 따르며 이 세대를 본받기 바쁘다. 

 한국의 모습은 한국 교회의 모습, 한국 목회자의 모습이다. 한국 목사의 좌경화, 한국 교회의 좌경화, 실은 타락한 세상을 따르며 한국도 그렇게 흐르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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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07월23일 01시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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