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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亡해갈수록 도발은 늘어난다
이명박 정부가 북한을 자극해 도발의 빈도와 强度(강도)가 늘었다는 헛소리

1.
 북한체제는 사실상 90년대 중후반 끝이 났다. 300만 대량아사는 북한의 배급제 붕괴를 뜻한다. 각종 자료와 탈북자 증언에 따르면, 2012년 현재 배급을 받는 비율은 10명 중 2~3명 꼴. 2000년대 이후부터 상당수 주민이 장마당을 통해 알음알음 먹고 사는 꼴로 달라졌다.
 
 사회주의 체제에서 배급제 붕괴는 체제의 붕괴다. 군과 당 간부, 군수산업 종사자 등 20~30% 인구를 빼고는 배급이 제대로 안 된다는 건 북한이 70~80%는 무너졌다는 것을 뜻한다. 총·칼로 찍고 김일성 우상화에 눌려 저항할 용기를 내지는 못해도 ‘이대론 안 된다’는 주민들 마음은 막기가 어렵다. 속으로 주민이 정권을 버리는, 변화의 씨앗이 커가는 것이다.
 
 절박한 것은 ‘달러($)’다. 불평·불만이 늘어 가는 주민들 통제를 위해선 특권층 배신을 막아야 한다. 달러가 있어야 군과 당 간부, 군수산업 종사자들 상대로 한 소위 ‘膳物(선물)정치’가 가능하다. 스위스 시계도, 벤츠나 BMW고급 승용차도 달러가 있어야 사온다. 핵무기·미사일 개발 자금도 마찬가지. 달러가 있어야 무기를 만들고, 무기가 있어야 미국과 협상을 벌인다. 한국도 협박한다. 북한이 망해가면 망해갈수록 정권의 달러에 대한 수요는 절박해진다.
 
 이른바 햇볕정책을 지지하는 세력은 이명박 정부가 북한을 자극해 도발의 頻度(빈도)와 强度(강도)가 늘었다고 주장한다. 對北강경정책 운운한다. 이것은 원인과 결과를 뒤집은 것이다.
 
 북한은 이명박 정부 출범 후 4개월이 지난 2008년 7월11일, 금강산 관광객 박왕자氏를 피격 살해했다. 이때는 對北강경정책이고 뭐고 나오지 않았을 때였다. ‘비핵·개방·3000’이라는 애매한 기조 아래 노무현 정권의 對北스탠스를 크게 바꾸지 않았다. 그러나 북한은 촛불시위로 정신을 차리지 못하던 이명박 정부를 先攻(선공)했고, 이 사건 이후 북한에 대한 소위 인도적 지원과 금강산 관광이 중단됐다.
 
 도발의 원인은 남한이 아니라 북한에 있었다. 망해 가는 북한, 달러가 절박한 북한은 남한에 칼을 뽑는다. 더 많은 달러를 달라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북한은 박왕자氏 살해 이후, 2007년 10월4일 노무현 정권이 북한에 대대적 지원을 약속한 10·4선언 이행을 촉구했다.
 
 2.
 북한이 限界(한계)로 갈수록 한국을 공갈치는 이유는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다. 예컨대 2009년도 북한무역통계(남북교역 제외)에 따르면 북한의 年間 수출액은 10.6억 달러, 수입액은 23.5억 달러로서, 무역수지 12.9억 달러의 赤字이다. 수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對중국 수출액은 年間 7.9억 달러(2009년)인데, 한국 정부가 매년 관광·무역·경협 등의 이유로 주던 돈은 年間 7~9억 달러에 달한다. 요컨대 한국이 주던 달러가 북한이 무역해 버는 달러에 해당될 정도로 컸다는 말이다.
 
 중국의 對北원조도 김일성 왕조를 살리는 데는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北核담당 대사(6자회담 차석 대표)를 지낸 이용준氏는 ‘게임의 종말’이라는 저서에서 “중국의 對北원조는 모두 現物(원유·식량·석탄 등)이므로 북한의 外貨(외화) 부족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이렇게 분석했다.
 
 “북한으로서는 대부분의 외화 부족액과 핵무기 및 미사일 개발 등에 필요한 특수자금을 주로 남한으로부터의 각종 현금성 수입과 무기, 마약거래 등 불법무역으로 충당해왔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으로부터의 외화유입이 차단되고, 일본 정부의 對北제재 조치로 조총련계의 對북한 송금도 급감하고 있는 상황에서 유엔 안보리의 제재조치 1874호와 對북한 PSI(대량살상무기확산 저지)활동 강화로 불법무역까지 크게 위축될 경우, 북한으로서는 核과 미사일 전력의 증강은 물론 정상적 무역결제마저 불가능한 상황이 도래할 가능성이 예견된다.”
 
 李대사는 중국의 對北지원은 “북한이 근근이 생존을 유지할 수 있는 최소한의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그는 “북한이 간절히 필요로 하는 거액의 현금을 공급할 수 있는 한국이야말로 중국을 능가하는 가장 강력한 對북한 견제와 압박수단을 보유하고 있다”고 단정했다. 명쾌한 지적이다. 망해갈수록 북한은 한국을 붙들고 늘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3.
 남북문제는 생존게임이다. 북한은 박왕자氏 사건으로 대대적 지원을 뽑아낼 계획이었지만 실패했다. 오히려 금강산관광 중단과 對北지원만 줄었다. 이듬해 북한은 또 다시 칼을 뽑았다. 2009년 9월6일 새벽 북한 쪽 황강댐 水門(수문)을 열어 약 4천만 톤의 물을 일시에 임진강으로 방류한 것이다. 이로써 임진강 야영객 6명이 살해됐다. 통일부 발표에 따르면, 역시 북한의 의도적 만행이었다.
 
 퇴로가 없는 북한은 致命的(치명적) 선택에 나섰다. 2009년 11월30일 취해진 소위 화폐개혁이다. 돈을 새로 찍고 예전 돈은 100분의 1의 가치만 인정해 줬다. 북한당국은 화폐개혁과 함께 시장폐쇄·외화통제도 나섰다. 비대해진 민간경제를 짓눌러 통제를 강화할 목적이었다.
 
 화폐개혁은 완벽하게 실패했다. 통제강화는커녕 불평·불만만 커졌다. 장마당에서 간신히 생계를 꾸려온 일반 주민은 죽음에 몰렸고 물가상승과 식량부족은 민심이반과 내부동요로 이어졌다. 절도와 강도 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고 주민들 식량탈취에 맞서 군대의 發砲(발포)가 있었다는 주장도 나왔다.
 
 화폐개혁 이후 물가는 10배 이상 올랐다. 식량 값이 특히 오르니 꽃제비와 자살자도 늘었다. NK지식인연대 2월7일 보도에 따르면, 함흥시 노숙자(꽃제비)는 10배가 늘었다. 화폐개혁은 시장에 전적으로 의존해 살던 최하층 주민에 가장 큰 피해를 주었다. 졸지에 생계수단을 잃었지만 보상도 없고 달리 살아갈 방법도 없었다.
 
 복수의 對北소식통에 따르면, 한국과 중국 내 탈북자들이 북한으로 거는 전화통화가 하루 3000~4000통에 이른다고 한다. 북한주민도 이제 세상 돌아가는 것을 대충은 알고 있다는 뜻이다. 게다가 300만 대량아사를 경험한 주민들이다. 이런 상황에 취해진 화폐개혁은 통제강화가 아니라 불평·불만의 소재만 된 것이다.
 
 한 탈북자단체 관계자는 “회령에서는 인심이 흉흉해 주민들로부터 보복이나 습격을 당할 수 있어 인민군들에게 군복을 입고 다니지 말라는 지시까지 내려졌다”고 말했다. “북한주민들은 더 이상 사석에서 김정일 뒤에 호칭을 붙이지 않는다. 모두 욕을 하니 말반동도 잡기 어려워졌다”는 말도 탈북자들로부터 흔하게 듣는다.
 
 북한당국은 다시 회초리를 들었지만 어수선했다. 혼란이 騷擾(소요)로 번지고 군부대가 출동했을 때 진압이 불가능해지거나 군대가 진압을 거부해 버리면 김정일 정권은 끝장날 수도 있었다. 1989년 12월 루마니아, 1979년 초 이란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 政權이 무너졌다.
 
 故황장엽 선생은 당시 “화폐개혁으로 북한정권은 언제 붕괴될지 모르는 시한폭탄처럼 변했다고 말할 수 있다”고 말했다. 탈북자 강철환氏는 “과거 한국군의 對北작전(풍선날리기·대북방송·물포작전 등)을 재개하면 얼마 못 가 북한정권은 끝날 것 같다”고도 말했다.
 
 ‘beginning of the end’ 체제의 사망이 시작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북한은 다시 시야를 南(남)으로 돌렸다. 내부의 불안을 밖으로 돌리기 위해, 돈과 쌀과 비료를 더 뜯어내기 위해 또는 임박한 김정은 세습을 위해, 남한을 상대로 도발에 나섰다. 이것이 화폐개혁 후 반년도 되지 않아 벌인 3월26일 천안함 폭침이다.
 
 우선 북한은 연례적인 韓美연합 훈련을 트집 잡았다. 한국과 미국이 3월8일부터 18일까지 ‘키리졸브 연습’에 들어가자 북한은 소위 北侵(북침)전쟁 연습이라며 극렬한 비방에 나섰고 “강력한 軍事的 對應(군사적 대응)으로 맞받아 나갈 것...核(핵)억제력을 포함한 모든 攻擊手段(공격수단)을 총동원(2월25일)”, “자위적 核억제력은 더욱 강화될 것(3월7일)”, “무자비한 懲罰(징벌)을 면치 못할 것(3월16일)”이라는 살벌한 공갈에 나섰다. 급기야 키리졸브 연습이 끝나고 일주일 뒤 천안함에 CH-02D 어뢰를 날렸다.
 
 4.
 북한은 체제유지 전략이 곧 對南전략이 된 지 오래다. 북한 주민의 동요를 막기 위해서도 전쟁위기감을 키워야 한다. 돈과 쌀과 비료를 뜯어내기 위해서도 마찬가지다. 나아가 한반도를 紛爭(분쟁)지역으로 만들어야 6·25때 맺은 停戰協定(정전협정)을 平和協定(평화협정)으로 바꿀 수 있다.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뀌면 주한미군을 몰아낼 수 있다. 주한미군이 나가면 남한은 얼마든지 요리할 수 있다는 게 북한 심보다. 안에서 썩어갈수록 밖으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북한의 도발은 한국의 강경책 때문이 아니라 북한의 본질인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북한은 2010년 5월20일 북한의 어뢰잔해가 공개된 후에도 이를 완강히 否認(부인)했다. 그러면서 “조선반도에 조성되고 있는 전쟁위험을 가시고 자주통일을 이룩하기 위한 근본방도는 민족최고의 통일강령인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을 고수 리행하는데 있다(6월25일 로동신문)”, “이 상황을 근본적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休戰協定을 平和協定으로 대체해야 한다(6월3일 유엔군축회의(CD) 참석 북한 리장곤 공사)”고 주장했다. 6·15선언과 10·4선언은 북한에 대한 대대적 지원과 연방제 통일을 하자는 주장이 담겨 있다. 천안함 폭침을 하고도 돈·쌀·비료를 내놓고 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꿔서 미군이 나가야 한다는 게 북한 주장이다. 연방제 통일은 이 모든 상황을 북한의 뜻대로 끝내는 마지막이다.
 
 남한에 이른바 從北(종북)이나 親北(친북)이 있냐고 묻는다. 2010년 천안함 폭침 후 이들은 전면에 드러났었다. 예컨대 통합진보당(舊민노당) 강기갑 의원은 북한의 천안함 폭침을 집요하게 부정하며 북한에 대대적 지원을 약속한 10·4선언 실천을 주장했다.
 
 그는 4월9일 임시국회 비교섭단체대표 연설에서도 “북한의 연계 가능성을 언급하는 것은 책임 회피일 뿐만 아니라 위험천만한 일”이라고 말한 뒤 그러나 “10.4선언의 이행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10.4선언에서 밝힌 서해평화협력지대 구상을 하루빨리 실현해야합니다.(···)지금이라도 정부는 10.4선언을 이행해 서해를 죽음의 바다가 아니라 平和(평화)의 바다로 만들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강기갑은 4월20일에도 “10·4선언만 제대로 이행했다면 천안함의 비극은 아예 일어나지도 않았거나 그 피해를 最小化(최소화)했을 것이고 지금 같은 국민 불안은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놀라운 일이다. 천안함 폭침은 북한이 하지도 않았다고 말하면서 북한의 요구사항인 10·4선언을 들어주면 평화가 온다니?
 
 천안함 폭침 이후 남한의 굴복을 바랬던 북한은 당황했을지 모른다. 5월24일 이명박 정부가 5·24조치라는 강수를 ‘비로소’ 들고 나온 것이다. 이는 ①북한선박의 우리해역 운항 전면 불허 ② 남북교역 중단 ③우리국민의 방북 불허 ④북한에 대한 신규투자 불허 ⑤대북지원 사업의 원칙적 보류 등이었다. 금강산 관광 중단에 이어 남북교역과 대북지원도 중단돼 버렸다.
 
 소위 남북한 관계가 경직된 원인은 한국이 아니라 북한에 있었다. 개혁·개방을 거부하는 폐쇄체제, 남한을 인질로 잡아서 달러를 뜯어야 버틸 수 있는 약탈경제, 여기에 김정일 건강 악화로 약해진 북한 내 리더십, 주민들의 점증하는 불평·불만이 어울려 북한이 자초한 일이다. 속에서 썩은 종양이 밖으로 터져난 셈이다.
 
 정부의 부담은 짐작이 되고도 남는다. 안팎의 공격에 둘러싸여 남북한 관계를 풀기 위한 명분을 찾았다. 예컨대 2010년 9월29일 정부가 대한적십자사를 통해 북한에 주기로 한 소위 인도적 지원액은 144억8000만 원에 달했다. 이 중 쌀 5000톤, 컵라면 300만 개, 시멘트 3000톤은 이미 전달됐고 같은 해 11월22일까지 지원이 계속됐었다. 그러나 북한은 남한의 지원을 챙기던 중인 11월23일 연평도 포격을 벌인다.
 
 북한의 목표는 남한과 관계를 회복하는 데 있지 않았다. 조건 없는 지원, 조건 없는 굴복, 조건 없는 예속. 남한을 인질이나 노예로 만드는 데 있었다. 북한이 망해가는 탓에 이러한 의지는 더욱 강력하고 처절해졌다.
 
 실제 천안함 폭침 6개월 후인 9월28일 북한은 자신들 체제의 목표를 또 다시 확인했다. 이들은 44년 만에 열린 조선로동당대표자회의에서 로동당 규약을 개정하면서 “조선노동당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당”이라고 밝힌 뒤 자신들의 목표를 “남조선에서 美帝(미제) 침략을 몰아내고 온갖 외세의 지배와 간섭을 끝장내며(…)전국적 범위에서 민족해방, 민주주의 혁명의 과업을 수행하고(···)최종 목적은 온 사회를 주체사상화”하는 데 있다고 못 박았다.
 
 미제침략을 몰아내고 민족해방·민주주의 혁명을 하자는 것은 북한의 전통적 對南(대남)전략이다. 남한이 美제국주의 침략 상태라는 전제 아래 남한에 주한미군을 철수시키고 소위 자주적민주정부를 세워서 이들과 연방제 방식의 통일을 하겠다는 전략이다. 또 이런 전략의 최종 목표는 “온 사회의 주체사상화”라는 한반도 赤化(적화)에 있다는 것이다.
 
 김일성 일가가 60년 간 추구해 온 한반도 赤化(적화)는 포기될 수 없는 것이다. 이는 이들 가문이 모든 폭압을 정당화해 온 근거가 赤化(적화)에 있는 탓이다. 그런 면에서 赤化(적화)의 포기는 김일성 일가 권력의 정당성 포기다.
 
 천안함 폭침 이후 이명박 정부의 화해 제안을 뿌리친 채 연평도 포격에 나선 이유가 여기 있다. 북한은 소극적으로 돈·쌀·비료를 뜯어내고, 적극적으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어 주한미군을 철수시킨 뒤 연방제 또는 연합제(이러한 방식의 통합이 수용된 6·15선언과 10·4선언)로 통일하자는 것이다. 코너에 몰릴수록 북한의 陰謀(음모)는 더 가속된다. 살 길이 남한 말고 없는 탓이다.
 
 실제 북한은 김정일 사후인 2011년 12월19일 조선중앙통신 전문을 통해서도 “우리는 조국통일3대헌장과 북남공동선언(6·15선언과 10·4선언 : 편집자 주)을 철저히 리행하여 온 민족의 단합된 힘으로 조국의 자주적 통일을 기어이 실현할 것이다”라고 결의를 다졌다.
 
 북한은 “6·15선언의 연합·연방제를 통해 고려민주련방제로 통일해야 한다(로동신문 2007년 1월17일자 外)”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고려민주련방공화국 창립방안을 조국통일3대헌장으로 정립하시고(로동신문 2010년 2월18일 자 外)”라고 떠들었다. 6·15선언과 10·4선언, 조국통일3대헌장은 赤化를 위해 김일성이 주장해 온 고려민주연방제(고려민주연방공화국)와 같다는 것이다.
  
김성욱의 전체기사  
2012년 02월11일 02시4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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