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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金日成주의와 싸운다
모든 거짓의 중심엔 金日成이 있다

글은 진실(眞實)을 담아야 한다. 거짓을 말하는 글은 선동(煽動)일 뿐이다. 명문(名文)은 현란한 수식 이전에 얼마나 진실에 가까운지 여부로 판단될 것이다.
 
 한국의 수많은 기자, 작가, 학자들의 글이 지탄받는 이유도 여기 있다. 조작, 왜곡, 날조로 점철된 잡문(雜文)과 단편적 사실(fact)을 거대한 거짓의 도구로 사용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 나라가 위기에 처해 있다면 그것은 경제가 아닌 정신의 위기인 것이다.
 
 한국 지성주의 파탄(破綻)은 60년 분단구도가 빚어낸 것이다. 선(善)과 악(惡)에 대한 뒤틀린 가치가 악(惡)을 선(善)으로 보게 하고 이로 인해 조작, 왜곡, 날조, 거짓이 동원됐다.
 
 무슨 말인가? 요약해보자. 북한정권에 대한 잘못된 시각이 대한민국에 대한 잘못된 시각을 만들고, 미국에 대한 잘못된 시각을 만들었다. 金日成의 민족반역행위와 북한정권의 태생적 반역성에 대한 오해(誤解)가 잘못된 글쓰기의 원인이 됐다는 말이다. 이것은 소위 주체사상(主體思想)파로 불리는 386운동권이 등장하면서 극심해졌다. 金日成은 항일운동의 영웅이고 민족의 정통성은 북한정권에 있으며 친일파가 만든 대한민국은 태어나지 말았어야 한다는 식의 친북(親北)논리가 횡행하면서 선악관이 왜곡되고, 글쓰기 역시 진실과 거짓이 뒤바뀐 조작, 왜곡, 날조의 나열이 돼버렸다. 80년 광주 이후 주체사상의 이념적 세례를 받았던 386세대는 대부분 이 같은 편향된 시각에 결박됐고, 그들의 말과 글 역시 극도로 치우쳐 버렸다. 한국 지성주의 파탄의 중심을 따라가 보라. 거기엔 「金日成주의」라는 엉터리 신화가 자리해 있다.
 
 <『金日成은 을지문덕, 이순신, 세종대왕과 같은 위인?!』>
 
 친북(親北)논리는 진실이 아니다. 대부분 거짓이다. 예를 들어보자. 위대한(?) 소설가로 평가받는 황석영은 방북 이후인 1992년《노둣돌》이라는 잡지의 창간호 인터뷰에서 『金日成은 을지문덕, 이순신, 세종대왕과 같은 위인』이라며 이렇게 평가했다.
 
 《그(金日成)는 어쨌든 사상의 차이는 도외시하더라도 두 번이나 세계 최강의 외세와 맞서 싸웠습니다. 나는 그가 어떤 의미에서는 대국(大國)인 중국혁명의 지도자 모택동보다도 훌륭한 점이 있으며 베트남의 호지명에 절대로 뒤지는 인물이 아닌 제3세계적 혁명가라고 생각합니다...이제 그는 올해로 만 80세를 넘겼습니다. 94년이 동학 백 년이 되는 셈인데 반외세 자주화 투쟁의 현대사 속에서 그는 어쨌든 역사와 더불어 살아온 셈입니다. 필자는 그가 우리 민족의 유일무이한 위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우리나라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민중이 소박하게 떠올렸던 여러 위인들 을지문덕, 이순신, 세종대왕, 이율곡, 정약용, 전봉준, 김구 등등처럼 위인의 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요. 나는 링컨이나 워싱턴은 그렇다 치더라도 심지어는 록펠러 카네기까지 위인으로 취급하는 것은 별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실소할 주장이다. 金日成은 소련의 꼭두각시로서 북한의 지배자가 된 자이다. 북한의 헌법과 국호(國號) 역시 스탈린이 지어준 것이고, 6·25 남침 작전계획도 소련 군대가 작성해줬다. 스탈린의 힘을 빌려 동족을 치는 전쟁을 벌이고 한반도를 국제전쟁터로 만든 것이 바로 金日成이다. 철수했던 미군을 다시 불러들인 자도 金日成이다.
 
 중공군도 金日成이 불러들였다. 중국 만주 쪽인 단동에 항미원조(抗美援朝) 전쟁기념관이라는 곳이 있다. 거기는 1950년에 金日成과 박헌영이 모택동에게 보낸 자필 편지가 전시돼 있다. 金日成이 편지를 썼을 때는 인천상륙작전으로 북한군이 도망가던 시점이다. 편지 원문은 이렇다.
 
 《우리의 자체의 힘으로서는 이 위기를 극복할 가능성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당신(당신은 모택동입니다)의 특별한 원조를 요구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됩니다. 즉 적군이 38도선 이북을 침공하게 될 때에는 약속한 바와 같이 중국인민군의 직접 출동이 절대로 필요하게 됩니다. 이상과 같은 우리의 의견을 당신에게 제의하게 되니 이에 대한 당신의 회답을 우리는 기다립니다.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金日成-박헌영. 1950년 10월1일 평양시.》
 
 편지는 유엔군이 쳐들어오니 중국 인민해방군을 보내달라는 뜻이다. 여기에 보면 『약속한 바와 같이』라고 돼 있다. 즉 모택동이 인민군을 보내서 金日成을 돕기로 약속을 미리 했다는 뜻이다.
 
 金日成은 6·25 직전 스탈린 지시를 따라서 모택동을 만났다. 여기서 모택동은 미군이 개입을 하면 중공군을 보내주겠다고 약속한다. 이 약속에 따라서 金日成-박헌영은 모택동에게 『약속한 바와 같이 중공군을 보내 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이 부탁을 받은 모택동은 10월19일 인민해방군을 항미원조군(抗美援朝軍), 지원군으로 위장을 하여 압록강을 건너게 한다.
 
 金日成은 6.25당시 두 번의 민족반역 행위를 저질렀다. 전쟁을 일으킬 때 스탈린-모택동의 도움을 받았고 북진 시 중공군을 끌어들여 통일을 저지했다. 이때 중공군이 들어오지 않았으면 대한민국은 1950년 10월 말 통일이 됐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400만 명의 인명이 살상됐다. 金日成은 400만 명을 전쟁으로 몰아 죽게 만든 한민족 역사상 최악의 반(反)민족 악당이었다.
 
 金日成은 6·25 이전에도 10월 대구폭동, 조선정판사 위폐사건, 여순반란사건, 제주4·3사태 등의 배후(背後)였다. 이는 소련 스티코프 대장 문서 등에서 밝혀진 사실이다. 金日成은 미군 포로는 다 돌려주면서 수만 명에 달하는 국군포로는 돌려보내지 않았다. 이민족보다 동족을 더 핍박했다. 金日成과 金正日은 박정희, 전두환 당시 대통령의 목숨을 노린 테러를 여러 차례 했다. 서울올림픽을 방해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1968년 1.21 청와대 습격사건, 1974년 8.15 육영수(陸英修) 암살사건, 1983년 10.9 아웅산 테러, 그리고 1987년 11월29일 KAL기 폭파사건이 있다. 그 아들 金正日은 체제유지를 위해 300만 명에 달하는 주민들을 아사(餓死)시켰다. 동족이라는 것이 부끄러울 정도이다. 이런 인간백정에게 『반외세 자주화 투쟁의 현대사 속에서...우리나라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민중이 소박하게 떠올렸던 여러 위인들』 운운하다니? 대체 제정신인가?
 
 <『얕은 압록강 넘어 잠깐 왔다 간』 조선독립운동의 영웅?>
 
 金日成을 독립운동가로 떠받는 것 역시 북한의 날조된 역사에 기초한 것이다. 金日成은 19세이던 1931년 10월에 중국 안도에서 중국공산당(中國共産黨)에 가입했다. 金日成은 그 직후 만주 안도의 소사하라는 곳에서 순시원으로 일했다. 그는 이곳에서 중국 공산당의 지령에 따라 별동대(別動隊)를 조직했다. 15~16명 정도의 소규모 부대였다. 전투부대가 아니고, 빨치산도 아닌 길 안내 등을 맡는 지원부대였다.
 
 북한은 金日成에 대한 역사를 조작하면서 이 별동대를 金日成이 단독으로 만든 조선인민혁명군(朝鮮人民革命軍) 산하의 항일유격대라고 선전하고 있다. 1930년7월6일 金日成이 조선혁명군을 창설하고 4년 뒤엔 다른 항일부대들을 통합, 조선인민혁명군을 만들었다고 기술한다. 조선혁명군이란 명칭의 독립군이 당시 남만주에서 활동하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이 혁명군은 민족주의계열, 즉 반공독립운동세력인 국민부에서 창설하여 운영하던 부대였고 양세봉이 총사령관이었다. 북한정권은 민족주의 계열의 부대명칭을 사칭해갔다. 양세봉은 金日成이 협력을 요청해올 때 『민족주의자들은 당파는 만들지만 사람을 죽이지는 않는다』면서 문전박대했다. 공산주의자들이 독립운동가 김좌진 장군을 죽인 일을 이른 것이다. 북한 역사서들은 金日成이 중국 공산당에 가입했다는 사실을 숨기고 그냥 공산당에 가입했다고 기술하고 있다. 누가 봐도 조선공산당에 가입한 것처럼 오해하도록 조작한 것이다.
 
 金日成이 소규모 부대를 이끌고 벌인 1930년대 만주에서의 항일무장투쟁은 전적으로 그가 소속된 중국공산당 산하의 동북항일연군의 지휘 하에 이뤄졌다. 金日成이 항일(抗日)운동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조선독립운동을 한 것은 아니다. 중국이 일본군의 침략을 당하고 있는 판인데 중국이 자신의 영토에서 조선인으로 하여금 항일운동을 지휘하도록 내버려 뒀을 리 있겠는가?
 
 金日成의 대표적인 조선독립운동으로 선전되는 1937년 보천보전투와 1939년 무산전투 역시 왜곡돼 있다. 한국 근현대사와 관련 30여 권의 저서를 집필한 근현대사 연구의 대가(大家) 성신여대 이현희(李炫熙) 명예교수는 보천보전투와 무산전투에 대해 각각 『보천보라는 리(里)단위 마을을 야습해 하루 동안 분탕질한 것』,『무산의 일본 주재소를 습격했던 유사한 사건』으로 정의하며 이렇게 말한다.
 
 『金日成의 동북항일연군은 중국공산당 소속으로 한국의 독립운동단체도 아니었다. 金日成은 동북항일연군에서 중국인과 조선인이 섞여 있는 30여 명을 이끄는 소대장급 신분으로 인근 보천보와 무산을 하룻밤 야습해서 분탕질한 데 불과하다. 얕은 압록강을 넘어 잠깐 왔다 간 것이다. 우리 측 자료는 물론 중국·일본 측 자료를 종합해 볼 때, 金日成이 항일의식이 있었던 것은 맞을지 모르나, 독립운동을 했다고 볼 순 없다』
 
 金日成은 동북항일연군의 제2군(軍) 6사(師) 사장(師長)의 지위에 있다가 소련으로 피신했다. 그의 상관은 중국인 주보중, 양정우 등이었다. 북한정권은 金日成이 소련으로 달아난 사실을 숨긴 채 조선인민혁명군을 지휘하여 일제와 끝까지 싸웠고 이 부대를 지휘해 북한을 해방시켰다고 주장한다. 실재하지도 않은 조선인민혁명군이 북한을 해방했다는 어처구니없는 날조, 조작 위에 서 있는 것이 바로 북한이다.
 
 金日成의 항일투쟁은 북한의 역사학계에 의해 창작됐고, 이러한 북한식 평가는 80년대 이후 남한의 소위 민족주의자들에게 무비판적으로 수용됐다. 그들은 보수세력에 대한 반발로 사료에 대한 취사선택이나 비판 없이 북한식 평가를 받아들인 것이다.
 
 <북한인권 침묵 주장에 『서울의 달동네에도 참담한 삶이 있다?』>
 
 한국 지성계의 잘못된 글쓰기 중심엔 친북(親北)논리가 있다. 이것은 과장이 아니다. 역시 위대한(?) 시인으로 평가받는 시인 고은은 2009년 8월24일 조선일보 최보식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북한 민중의 고통을 노래하지 않는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우리나라에 외국 원수가 와서 서울의 달동네에 가 봐도 그렇지 않나요. 북한만 그런 게 아니라, 거기도 참담한 삶이 있습니다. 우리 대통령이 도시 빈민을 어떻게 다 해결합니까.』
 
 崔기자가 「혹시 북한 주민의 참상과 우리 빈민의 문제가 같다고 보는 건가요?」라고 되묻자 고은 시인은 『그건 아니고요. 국가 최고 지도자에게 모든 걸 책임지라고 하는 것은…. 파편적으로 들려오거나 소문으로 알 수가 없죠. 내가 현장에 가보지 않는 한. 현장에 가려면 이 체제와 만나야지요. 또 북한을 들어가도 내 마음대로 다닐 수 없었습니다.』라고 답했다.
 
 崔기자는 이어 「북한 주민의 참상에 대한 자료는 많고 숱하게 보도됐습니다. 당장 우리 주변에는 이를 증언할 탈북자들이 1만5000명이 넘습니다」라고 물었다. 고은 시인은 『일일이 지적해서 남북 관계에서 무슨 기여를 합니까. 나는 정치인이 아니에요. 개선해 줄 아무런 힘이 없는 사람이에요』라고 답했다.
 
 고은 시인이 북한 민중 인권 참상에 침묵한 이유는 △서울의 달동네에도 참담한 삶이 있다, △국가 최고 지도자에게 모든 걸 책임지라고 할 수 없다, △파편적이고 소문으로 정확한 진실을 알 수 없다, △정치인이 아니므로 개선해줄 아무런 힘이 없다는 등등이다.
 
 황당한 주장이다. 서울의 달동네에도 참담한 삶이 있다? 시인은 답해야 한다. 서울에 백주대낮에 공개처형이 벌어지는가? 金日成 사진에 낙서를 했다는 이유로 온 가족이 끌려가는 정치범수용소가 있는가? 돼지나 염소 값에 성(性)노예로 팔려 다니는 20만 넘는 처녀들이 살고 있는가? 철사줄에 코를 꿰서 끌고 가는 강제송환의 두려움에 떨고 있는가? 끌려온 뒤에는 영아살해·강제낙태의 유린을 당하는 수십 만 누이들이 감금돼 있는가? 기독교 신앙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죽임을 당하는 자유의 박탈, 아니 자유의 질식이 있는가?
 
 국가 최고 지도자에게 모든 걸 책임지라고 할 수 없다는 말은 엽기적이다. 북한의 공산주의는 시장과 기업을 부정한다. 무상배급(無償配給)을 한다더니 90년 이후 金日成 체제에 적대적 계층은 아예 배급을 끊어버렸다. 아사자(餓死者)들이 본격적으로 길거리를 뒤덮기 시작한 94년, 9억불의 돈을 들여 금수산기념궁전을 지었다. 여기에 金日成을 미이라로 만들어 유리관에 안치시켰다. 9억불이면 북한의 3년 치 식량 값이다. 굶어 죽는 사람이 가장 많이 나오던 99년에는 식량수입을 20만t이하로 줄였다. 대신 남은 외화로 미그21기 40대와 헬리콥터 8대를 카자흐스탄으로부터 구입했다. 金日成 시체를 관리하는 비용만 매년 11억 원, 이미 죽은 金日成 생일 비용은 360억 원에 달한다. 북한에서 지금도 계속되는 굶주림과 이로 인한 끔찍한 고통들은 누구 탓인가? 국가 최고 지도자 탓이다. 金正日 책임이다.
 
 『파편적이고 소문으로 정확한 진실을 알 수 없다』는 주장은 위선적(僞善的)이다. 북한에서 대한민국으로 탈출한 1만5000명의 증인이 있고, UN과 EU에선 해마다 북한인권에 대한 결의안을 통과시킨다. 얼마나 더 많은 정보를 원하는가? 『정치인이 아니므로 개선해줄 아무런 힘이 없다』면 그는 민중을 말해선 안 된다. 민족도 말해선 안 된다. 통일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그는 정치인이 아니지 않은가?
 
 <그들이 과연 민족을 말할 자격이 있는가?>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가장 큰 사기는 바로 「민족」이다. 정확히 말하면 金日成주의로 오염된 「민족」이다. 80년대 이 지독한 바이러스에 감염된 386세대는 아직도 정신적 혼미를 벗지 못하고 있다. 북한정권의 과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되풀이되고 되풀이된 패륜적 죄악은 덮어버렸다. 포용할 대상으로만 바라보았다. 어이없게도 북한정권에 압제당하는 절대다수 북한의 동포는 외면했다. 3만8천 개의 金日成 동상과 핵무기와 미사일을 만들다 배급도 못 받고 굶어 죽어간 300만 명도 노래하지 않았다. 아우슈비치보다 더 끔찍한 정치범수용소에서 죽어간 100만 명도 그리지 않았다. 배가 고파 강을 넘곤 돼지 값에 팔려 다니는 수십만 동족처녀들도 말하지 않았다. 민족을 앞세웠지만 그들이 감싸 안고, 덮어주고, 사랑하는 민족은 金日成과 金正日에게 충성하는 「평양정권」이었다.
 
 창작은 순수(純粹)한 것이다. 돈과 물질, 명예를 따르는 세속적 사람과 다르다. 순수한 가치를 쫓다가 시인이 되고, 소설을 쓰고, 평론을 날렸을 것이다. 민족과 소수자, 약자에 대한 순수한 열정이 그 길을 걷게 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변했다. 대한민국의 권위주의가 사라져 민주화됐고, 폐쇄된 북한이 조금씩 열리니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포악한 집단임이 확인됐다. 진실로 민족과 소수자, 약자를 위하는 것이 무언지 확인할 정보가 생겼다. 386세대도 돌아설 시기가 된 것이다. 80년대 꽃병을 던지며 자유와 해방을 외치던 그들이 이제는 「평양정권」 종식을 통해 북한민중에게 소금과 빛과 같은 존재가 되는 내일이 오기를 희망해 본다.
  
김성욱의 전체기사  
2009년 09월25일 22시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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