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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첩·빨치산 묘역 만든 단체 대표가 국가 인권委 위원
노무현 법무비서관도 現職 위원, 부산 실천연대 대표는 前職 위원

 촛불난동(亂動)을 비호하는 「국가인권위원회(인권委)」에는 실천불교전국승가회 현직 의장 및 노무현 정권 법무비서관 출신 등이 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1. 정재근 위원
 
 인권委 위원인 정재근(법명 법안)씨는 現職 실천불교전국승가회 의장이다. 실천승가회는 7월4일 서울 시청 광장에서 소위 「국민주권 수호와 권력의 참회를 촉구하는 시국법회」를 주도하는 등 소위 李明博 정부의 종교차별을 전면에서 규탄하고 있다.
 
 실천승가회는 98년 6월 「비전향장기수후원회」, 99년 9월 「국보법반대국민연대」, 2001년 3월 친북(親北)단체인 「통일연대」, 2005년 2월 「평택미군기지확장저지汎국민대책위원회(평택범대위)」등에 참여했었다.
 
 실천승가회는 2005년 5월 경기도 파주시 보광사에 『불굴의 통일애국투사묘역 연화공원』이라는 이름의 간첩·빨치산 묘역(墓域)을 조성했다.
 
 묘역의 비석엔 남파간첩을 『의사(義士)』, 빨치산출신을 『애국통일열사』로 표현하며 『애국통일열사 정순덕 선생. 마지막 빨치산 영원한 여성전사...』등의 비문(碑文)을 새겨 넣었다.
 
 간첩·빨치산 추모공원 조성사실이 알려진 후 HID동지회 등이 비석을 파기하자, 승가회 사무국장은 『民主主義에 기여한 비전향장기수들의 묘역에 대해 보수단체가 색깔시비를 걸고 있다(2005년 12월3일「민중의 소리」 인터뷰)』고 주장했었다.
 
 정 씨는 2006년 2월28일 소위 종교단체 대표자 발표문을 통해 『7.4공동성명, 남북기본합의서, 6·15공동선언이 효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법정비가 이뤄지길 바란다』며 특히 『남측의 국가보안법을 들어 남측이 헌법과 법률에 남아있는 냉전적 요소들을 정비하는 일에 먼저 앞장설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2. 황덕남 위원
 
 인권委 위원인 황덕남씨는 2003년 2월부터 2003월 8월까지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실 법무비서관으로 재직하며, 노무현氏의 법률자문을 담당했었다. 그는 유남영, 조국 위원과 함께 지난 해 대선 직후인 12월23일 임명됐다.
 
 3. 최경숙 위원
 
 인권委 위원인 최경숙씨는 부산여성장애인연대 대표 출신으로서, 국가보안법 폐지와 이라크파병 반대 등을 주장해왔다.
 
 그는 2004년 10월6일 부산 서면 롯데백화점 앞에서 「국가보안법폐지를 위한 부산女性선언자대회」를 주도했다.
 
 최 씨가 낭독한 선언문은 『국가보안법은 지난 56년간 냉전과 분단의 상징으로, 역대 독재자들은 남과 북의 분단 상황을 이용하여 국민의 사상·양심·학문의 자유,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와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부당하게 침해했다』며 『우리 부산지역 여성들은 부분개정론, 대체입법론, 폐지 후 형법개정론 모두 반대』한 뒤 『국가보안법의 완전폐지』를 주장했다.
 
 최 씨는 2003년 10월9일 「이라크 파병에 반대하는 여성 1000인 평화선언」에 참가했고, 같은 해 11월13일에는 「부산지역 이라크 파병결정 철회 300인 선언」에 참가했다.
 
 후자는 『미국의 추가파병요구가 침략전쟁에의 동참을 강요하는 파렴치한 전쟁공모행위이자, 불평등한 韓美관계를 활용하여 침략전쟁의 총알받이로 내몰려는 추악한 내정간섭행위임을 강력히 규탄한다』고 주장했다.
 
 4. 유남영·윤기원 위원
 
 인권委 위원인 유남영氏와 윤기원氏는 모두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民辯)」 간부출신이다. 유남영 위원은 전북 남원 출신으로 서울 법대와 워싱턴주립대를 나왔고, 윤기원 위원은 서울 출신으로 서울 법대와 同대학원을 나왔다.
 
 民辯은 「국보법폐지국민연대」,「평택범대위」 등에 참여해 온 左派성향 변호사 조직이다.
 
 民辯은 송두율 구속 당시 『제2, 제3의 송두율 교수와 같은 국가보안법의 피해자가 양산되지 않기 위해서는 국가보안법과 검찰 공안부를 폐지하여야 한다.(2004.7.21. 성명 中)』는 등 비호했었다.
 
 5. 조국 위원
 
 인권委 위원인 조국氏는 한총련 구속자 석방 등을 주장했던 「양심수석방300人선언(2002.8.10),「송두율석방시민사회1000人선언(2003.10.23)」,「국보법폐지촉구全國교수1000人선언(2004.10.27)」 등에 참여해왔다.
 
 조 씨는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부소장(2000~2002),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소장(2002~2005), 민보상위 자문위원(2000~2001), 등을 지냈으며 현재 서울대 법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참여연대는 「국보법폐지국민연대」, 「평택범대위」 등에 참여했었다.
 
 6. 김칠준 사무총장
 
 인권委 사무총장인 김칠준氏는 경기복지시민연대 공동대표, 참여연대 작은권리찾기운동본부장 등을 역임했다.
 
 김 씨는 2004년 12월12일 서울 경희대에서 「부시·블레어·노무현 등의 이라크전쟁범죄와 파병에 대한 민중법정」의 소위 기소대리인으로 나섰다.
 
 당시 김 씨는 『부시, 블레어에게는 전쟁범죄의 책임, 노무현 대통령에게는 공범의 책임이 있다』며 『소멸시효배제를 선언하는 국제법의 원칙에 따라 반드시 피고인들의 생이 다하기 전에는 집행할 날이 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7. 원형은 위원
 
 촛불난동 중인 5월31일까지 재직했던 인권委 위원 원형은氏는 최근 이적단체로 기소가 된 실천연대의 부산지부인 「6·15공동선언 釜山실천연대」 공동대표 맡았다.
 
 원 씨는 한총련 합법화 및 구속자 석방을 주장했던 「한총련합법화1000人선언(2002.7.19)」, 「한총련합법화宗敎人1000人선언(2002.7.18)」, 「양심수석방300人선언(2002.8.10)」,「양심수석방各界인사기자회견(2003.4.8)」 등에 참여했었다.
 
 원 씨는 「국가보안법폐지 釜山연대」 공동대표, , 「釜山목회자정의평화실천협의회(목정평)」 회장 등도 맡고 있다. 목정평은 親北단체인 「통일연대」 및 「국보법폐지국민연대」 ,「평택범대위」 등에 참여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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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 파주 보광사 통일애국열사묘역 조성
 
  필자는 2005년 11월18일 경기도 파주시에 위치한 보광사를 찾았다. 소문으로만 듣던 「빨치산묘지」를 찾아 의정부로 향했다 파주시로 발길을 돌린 것이다. 초행이라 버스와 택시를 서 너 번갈아타고 도착한 보광사는 신라시대 유흔(遺痕)이 남아있는 千年 古刹이었다. 사찰로 오르던 중 커다란 석조(石彫) 안내석이 눈에 들어왔다.
 
 「불굴의 투사 통일애국투사묘역 연화공원」
 
 이 공원에는 남파간첩으로 알려진 금재성, 최남규와 빨치산 출신 류낙진, 정순덕, 손윤규, 정대철 등 비전향장기수 6명의 유해가 비석과 함께 안치돼있었다. 묘역은 실천불교승가회(대표 효림, 성관)가 2005년 5월 경기도 파주시 보광사 내 공원형태로 조성한 것이었다.
 
 비석에 새겨진 비문(碑文)은 남파간첩에 대해「의사(義士)」, 빨치산출신에 대해「애국통일열사」라 부르며 아래와 같은 내용을 담고 있었다.
 
  『애국통일열사 정순덕 선생. 마지막 빨치산 영원한 여성전사, 하나 된 조국 산천의 봄꽃으로 돌아오소서』
 
 『애국통일열사 류낙진 선생. 민족자주조국통일의 한길에 평생을 바치신 선생님, 우리민족사에 영원히 빛나리』
 
 『애국통일열사 손윤규 선생. 조국통일을 위해 투쟁하시다가 비전향으로 옥중에서 생을 마친 열사 여기에 잠들다』
 
 『의사(義士) 故 최남규 선생. 해방 후 청진 교원대학 지리학교수로 교육사업에 헌신하였으며 조국통일을 위해 헌신하시다가 57년 구속되어 29년의 감옥생활에서 지조를 지켜내신 민중의 벗. 『백두』옹 여기에 잠들다』
 
 『의사(義士) 故 금재성 선생. 일제강점 하 민족해방투쟁으로 3년의 소년 옥과 해방 후에는 조국통일을 위해 57년 투옥되어 30년의 형옥 속에서도 전향을 하지 않고 당신의 지조를 지키며 빛나는 생을 마치다.』
 
 <「통일애국열사묘역」에 묻힌 간첩·빨치산들 면면(面面)>
 
 ▲류락진(2005년 4월 사망) - 죽는 날까지 大韓民國 파괴활동 매진(?)

 
 연화공원에 안장된 금재성, 최남규, 류낙진, 정순덕, 손윤규, 정대철 등은 비전향장기수로 북한에 대한 충성을 바꾸지 않았던 인물들이다.
 
 류락진은 6.25사변 당시 지리산 일대에서 빨치산으로 활동하다 체포돼 사형선고를 받았다. 그는 57년 가석방된 후 63년 「혁신정당」사건으로 구속돼 67년 석방됐고, 71년 다시「호남통혁당재건委」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88년 가석방됐다. 출소 후 운동권을 상대로 빨치산 강연을 벌여 온 류낙진은 94년「구국전위」 사건으로 구속돼 8년형을 선고받고 99년 광복절특사로 석방됐다. 93년 1월 조직된 구국전위는 「조선노동당」의 남한 내 지하조직으로서 창립선언문과 강령 및 규약에서 북한의 主體思想을 조직의 유일한 지도적 지침으로 삼고 있다. 규약 중 일부를 소개하면 아래와 같다.
 
 『구국전위는 위대한 金日成 동지께서 창시하시고 친애하는 지도자 金正日 동지께서 발전 풍부화시켜 오신 새로운 노동계급의 혁명적 세계관이며 남반부에서 민족해방민주주의혁명완수의 가장 정확한 학설인 主體思想을 유일한 지도이념으로 삼는 주체(主體)형의 金日成주의 지하조직이다』
 
 류낙진의 反국가활동은 99년 석방 이후에도 죽는 날까지 계속됐다. 그는 2002년 백운산지구 빨치산위령비 비문(碑文)작성 사건으로 징역 8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류낙진은 이적단체(利敵團體) 범민련 남측본부 고문으로 활동하다 2005년 사망하는데, 그의 가족들은 부의금 5천만 원을 통일운동에 써달라며 범민련 남측본부에 기탁했다.
 
 ▲최남규(1999년 사망); 『백두산 장군에 대한 충성』으로 전향 거부
 
 스스로 『백두산 장군(金正日)에 대한 충성』 때문에 전향하지 않았다고 밝힌 최남규는 1912년 함경북도 명천 태생으로 청진대학 지리학 교수로 재직 중 57년 간첩으로 남파됐다. 그는 남파후 서울서 간첩활동을 벌이다 57년 9월12일 동료 공작원의 밀고로 체포돼 15년형을 선고받고 73년 만기출소했다.
 
 최남규는 출소 후 3년 간 엿장수 생활을 하다 75년 7월 사회안전법 위반으로 다시 구속돼 89년 풀려났다. 그는 출소 직전인 89년 5월11일 청주보안감호소에서 「그날 그때가 올 때까지」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가고픈 내 고향에 가고파도 내 못가네. 광복된 이 조국에 38선 웬 말인가 이 땅 뉘 땅인데 주인행세 누가하고 아름다운 금수강산 짓밟질랑 말고서 돌아가라, 사라져라, 어서 꺼져버려라. 고-홈 고-홈 양키 고 홈』
 
 ▲정순덕(2004년 사망); 63년 체포된 마지막 빨치산
 
 정순덕은 1933년 경남 산청 출신으로 6.25사변 발발 후 인민위원회 활동을 하던 남편을 따라 1951년 스스로 빨치산이 됐다.
 
 정순덕은 국군의 대대적 토벌작전으로 지리산에서 덕유산으로 쫓겨 가 빨치산 활동을 지속하다 63년 11월 체포됐다. 이후 정순덕은 대구·공주·대전교도소에서 23년 간 복역하다 1985년 8월 가석방됐다.
 
 정순덕은 지난 2003년 모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왜 북한에 가려고 하느냐?』는 질문에 『전향서를 썼다고 하지만, 강제로 한 거니까 인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금재성(1998년 사망) 인민군 제대 후 간첩으로 남파
 
 1924년 충남 대전 출생인 금재성은 보통학교 졸업 후 원산에서 사회주의 활동을 하다가 44년 금촌 소년 형무소에 투옥됐다. 금재성은 출소 후 45년 공산당에 입당해 독찰대(헌병) 원산지구 대장으로 활동하던 중 6.25사변 발발과 함께 인민군으로 참전했다. 정전(停戰) 후 제대해 원산 주을전기전문학교 교장으로 근무하던 중 56년 정치공작원으로 남파돼 고향인 대전에서 간첩활동을 벌였다. 그는 이듬해 체포돼 15년형을 선고받고 72년 대전교도소에서 만기 출소했다.
 
 ▲손윤규(1976년 사망) 빨치산 활동하다 사형 받아
 
  전북 부안 태생의 손윤규는 해방 후 남로당에 가입해 활동하다 6.25사변 당시 지리산에서 빨치산으로 활동했다. 이후 그는 55년 경찰특무대에 구속돼 육군 고등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수감생활을 하던 중 76년 옥사(獄死)했다.
 
 「간첩`빨치산 통일애국투사 묘역 조성」보도가 2005년 11월19일 미래한국신문과 코나스 등에 실리고 이어 조선일보 등이 이를 이슈화하면서 한나라당과 시민단체들의 규탄이 잇따랐다.
 
 급기야 2005년 12월5일 오전 11시경 H.I.D출신인 10여 명의 청년들은 묘역 내「의사(義士)」와 「애국통일열사」로 새겨놓은 비석들을 해머 등을 동원해 철거했다.
 
 「전국연합」 등은 2005년 12월9일 HID의 묘비 철거에 대해 『천인 공로할 만행』이라며 기자회견을 가졌다.
 
 북한의 對南선전매체 반제민전(舊 한민전)도 같은 날 『인간쓰레기들의 극악한 야만행위』라며 비난에 나섰다.
 
 반제민전은 이날 논평을 통해 『비전향장기수들로 말하면 생의 마지막까지 통일애국의 지조를 지켜 싸운 민족의 장한 아들들이며 불굴의 통일애국투사들이다』며 『살아생전 쇠고랑을 채우고 가혹한 죽음을 강요한 장본인들과 그 후예들의 기가 살아 통일애국투사들의 고귀한 넋을 함부로 모독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김성욱 기자의 전체기사  
2008년 10월30일 16시2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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