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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神父였지만 그의 神은 마르크스였다"
법철 스님, "해방불학(解放佛學)으로 美帝로부터의 해방을 선동했다"

법철 스님
 불교계의 소위 종교편향 반발과 관련, 불교계 내부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9월20일 부산 코모도호텔에서는 「대한민국지키기불교도총연합(대불총) 부산지회」결성기념 대토론회가 개최됐다.
 
 대불총 이법철 지도스님은 행사 자료집에 수록된 「위태하다. 위태해」라는 글을 통해 『왜 불교계가 (불법집회) 수배자들을 위해 對정부 투쟁을 하느냐?』며『불교계 일부가, 청와대에서 李대통령이 자신의 신앙 따라 예배 본 것을 경천동지(驚天動地)할 대역죄(大逆罪)같이 떠드는 것은 「우리는 소인배(小人輩)」라는 것을 만천하에 알리는 꼴』이라며 이렇게 덧붙였다.
 
 『과거 朴대통령 18년 재직 시, 육영수 여사가 독실한 불자였기에 청와대에 승려들의 출입은 잦았다. 승려들이 청와대에 목탁을 치고 법회를 본 것이 한 두 번인가. 도선사 암벽 소로(小路)를 공병대대가 동원되어 대로(大路)로 만들었다. 「국방의 공병대대가 왜 사찰에 동원되어 길을 닦는가」에 대해 시비를 거는 기독교인은 없었고, 「종교편향」이라고 궐기하지도 않았다. 내 편이 하는 행위는 종교편향이 아니고, 남이 하면 종교편향이라고 맹공을 퍼붓는 것은 아집(我執)의 극치이다.』
 
 법철 스님은 『어청수 청장의 선교포스터 역시 기독교 청장이 올 때마다 으레 있어온 선교포스터라는 것이 증명되었지 않느냐』며 이렇게 지적했다.
 
 『좌파정권 10년 동안 선교포스터에 오른 기독교 청장에 대해서는 왜 입을 닫고 있었나? 어청장이 시정하고 사과했으면 대승적인 차원에서 받아주는 것이 자비의 간판을 세우는 불교인의 자세가 아닌가? 어청장이 왜 사퇴해야 하는가? 광우빙자 폭동자들의 청와대 진출을 선방(善防)한 소신 있는 청장에게 포상과 격려를 해주어야 제정신이 아닌가? 왜 광우빙자 폭동자들의 「어청장 사퇴」의 구호를 승려들이 복창하는 것인가?』
 
 법철 스님은 이어『불교계에 독버섯처럼 피어나고 있는 좌파 승려들은 어디서 교육을 받았을까』라고 의문을 제기한 뒤 자신의 경험을 덧붙였다.
 
 『필자의 경험과 관찰 상 불교계의 좌파 승려들 대부분은 태생적 붉은 집안의 자손이요, 놀랍게도 붉은 신부들로부터 교육을 받았다고 본다. 과거 필자에게도 모 신부는 내게 천연색 화보가 있는 책자를 펴 보이며 남미의 해방신학을 강의하려했다. 차나 한잔 하자는 제의를 받은 필자에게 그는 천주교 교리가 아닌 해방신학을 강조하며, 불교계는 해방불학(解放佛學)을 해서 자신들과 힘을 합쳐 민족을 미제국주의자로부터 해방하여 조국통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신부였지만 그의 신은 마르크스였다.』
 
 [아래는 법철 스님의 글 全文]
 
 위태하다, 위태해…
 -한국불교 조직을 반정부 조직으로 운용할 것인가-

 
 
  한국불교 제종단(諸宗團)은 정교분리(政敎分離)속에 포교하고 수행하며 정신적이나 육체적이나 요익중생(饒益衆生)하는데 헌신, 봉사하는 사명을 가져야 한다.
 
  한국불교계가 현실정치에 개입하여 특정정당이나, 정치인의 정치노선을 지지하여 명운을 함께하는 작태를 보인다면, 지지하는 정당과 정치인이 권세를 잡았을 때는 호가호위(狐假虎威)의 권세를 누리고, 떡고물같은 이익을 얻어 챙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반대가 되었을 때는 지지하는 정당과 정치인의 몰락과 파멸에 공동운명의 길을 걷게 되고 만다. 그것은 고려말 불교의 교훈이 웅변으로 증명하고 있다. 그런데 작금의 한국불교계의 총본산인 조계종의 이지관총무원장이 벌이는 대정부 요구의 투쟁은 정교분리를 떠난 반정부투쟁으로 급속히 변하고 있다.
 
  이총무원장은 정녕 불교계의 권익을 위해 투쟁하는 것인가? 수배자 해제를 위한 투쟁인가? 누구를 위한 투쟁인가? 필자는 조계종단에서 40년이 넘는 세월을 살아오는 승려의 한 사람으로 불교조직을 보호하기 위해 통탄과 위태를 언급치 않을 수 없다.
 
 
 한국불교계, 부끄러움 알아야
 
  세론(世論)은 날로 고조(高潮)되어가는 한국불교의 대정부 투쟁을 보면서 처음에는 「종교차별금지」에 대해서는 긍정을 보이다가 이제는 냉소와 맹비난을 퍼붓고 있다. 양두구육(羊頭狗肉)의 장사꾼처럼 종교차별금지를 국민들에게 외치면서 속내는 광우빙자 폭난을 일으키어 수배된 자들을 보호하고, 수배해제 운동을 한다는 것을 온 국민이 이제 환히 깨닫고 있다.
 
  못 먹고 못 입으면서도 법을 준수하고, 법치를 바라는 국민들이 동의할까? 왜 수배자들을 위해 불교계가 나서 대정부투쟁을 하며 협박해야 하는가? 좌파정권 10년에 대정부를 향해 일언반구(一言半句)의 투쟁적 요구와 집단행동이 없던 불교계가 아닌가?
 
  좌파정권 10년 세월동안 조계종 총무원장은 권부의 시녀처럼, 위정자가 평양행을 하면, 고문이 아닌, 졸개(卒介)같은 수행원이 되어서라도 평양행을 했다는 것을 전국민이 익히 알고 있다.
 
  그러나 한미동맹과 대한민국 수호를 위해 애국시민들이 서울역 광장, 시청 앞 광장 등에서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태양이 작열한 때나 애국집회를 할 때 철저히 외면했지 않는가?
 
  이 땅의 기독교인들은 저 이스라엘이 전화(戰禍)에 휩싸였을 때, 찬송가를 부르며 죽음의 전장터로 가는 애국 청년, 처녀들처럼, 좌파정권 10년에 조국인 대한민국이 실종, 몰락되는 위기감에 서울광장에 나와 태극기를 흔들며 울며 애국가를 부르며 대한민국 수호를 외치고, 만세를 부르고 또 부르는 것을 필자는 목도했다.
 
  한국불교계의 조국은 어디인가? 종교의 자유가 있는 대한민국인가, 삭발위승(削髮爲僧)한 승려가 단 한명이 없는 북한인가? 대한민국 수호에는 오불관언(吾不關焉)인 승려들이 집단이기주의 같은 「종교편향」에는 요원의 들불을 일으키듯 전국적으로 대정부투쟁에 나서고 있다. 국민들은 바닥을 치는 경제에 장탄식이 쉬지않고 더욱이 9월 경제위기설에 밤잠을 설치는데, 일부 승려들은 자신들의 대우, 자신들의 주장, 자신들의 밥그릇 싸움에 대정부 투쟁의 전고(戰鼓)를 쉬지않고 울려대고 있다. 아아, 뉘라서 초월자들의 모습이라고 할 것인가? 후안무안무치한 일이 아닌가.
 
 기독교와 전쟁을 하자는 것인가?
 
 다종교 사회에 종교인 사이에 유혈충돌(流血衝突)이 없는 곳이 세계 유일의 대한민국이다. 한국인의 긍지가 아닐 수 없다.
 
 대정부 투쟁을 가속화하는 불교계의 일부가, 청와대에서 이대통령이 자신의 신앙따라 예배를 본 것을 경천동지(驚天動地)할 대역죄(大逆罪)같이 떠드는 것은 『우리는 소인배(小人輩)들』이라는 것을 만천하에 알리는 꼴이다.
 
 왜냐면, 과거 박대통령 18년 재직 시, 육영수 여사가 독실한 불자였기에 청와대에 승려들의 출입은 잦았다. 승려들이 청와대에 목탁을 치고 법회를 본 것이 한 두 번인가. 도선사 암벽 소로(小路)를 공병대대가 동원되어 대로(大路)로 만들었다. 국방의 공병대대가 왜 사찰에 동원되어 길을 닦는가, 에 대해 시비를 거는 기독교인은 없었고, 종교편향이라고 궐기하지도 않았다. 내편이 하는 행위는 종교편향이 아니고, 남이 하면 종교편향이라고 맹공을 퍼붓는 것은 아집(我執)의 극치이다.
 
 어청수청장의 문제도 생각을 바꿔야 한다. 어청장의 선교포스터는 기독교 청장이 올 때마다 으레 있어온 선교포스터라는 것이 증명되었지 않는가?
 
 좌파정권 10년 동안 선교포스터에 오른 기독교 청장에 대해서는 왜 입을 닫고 있었나? 어청장이 시정하고 사과했으면 대승적인 차원에서 받아주는 것이 자비의 간판을 세우는 불교인의 자세가 아닌가? 어청장이 왜 사퇴해야 하는가? 광우빙자 폭동자들의 청와대 진출을 선방(善防)한 소신있는 청장에게 포상과 격려를 해주어야 제정신이 아닌가? 왜 광우빙자 폭동자들의 『어청장 사퇴』의 구호를 승려들이 복창하는 것인가?
 
  이대통령이 장로이기 때문에 종교편향을 운위(云謂)하며 타도, 표적으로 삼아 맹공을 퍼붓는 것은 기독교인들 전체에게 시비를 걸고 있는 것과 오십보백보이다. 작금의 기독교인들은 『종교편향』이라는 말에 묵묵히 인내하고 있는것 같다. 그러나 그들이 언제까지 인내할 수는 있을까? 어느날, 불교계를 향해 『너희는 종교편향이 없었나?』로 메아리쳐 올 때 한국사회에 종교간의 충돌은 일어나게 마련이다. 자신의 우치한 소신인지, 조종당하는 것인지는 모르되, 유사이래 불교와 기독교와의 충돌을 부르는 주도적인 불교 승려가 있다면, 종교의 화합을 바라는 종교인들과 일반국민들이 용서치 말아야 할 것이다. 그는 국론분열의 핵심좌익일 것이다.
 
 불교계, 붉은 신부들의 제자들
 
  불교계의 독버섯처럼 피어나고 있는 좌파 승려들은 어디서 교육을 받았을까? 붉은 사상을 독각(獨覺)했을까? 평양에서 밀파된 공작원들에게 받았을까? 좌파 정치인들에게 받았을까? 아니면 직접 평양에 들어가 교육울 받았을까?
 
 필자의 경험과 관찰상 불교계의 좌파 승려들 대부분은 태생적 붉은 집안의 자손이요, 놀랍게도 붉은 신부들로부터 교육을 받았다고 본다. 과거 필자에게도 모 신부는 내게 천연색 화보가 있는 책자를 펴보이며 남미의 해방신학을 강의하려했다. 차나 한잔 하자는 제의를 받은 필자에게 그는 천주교 교리가 아닌 해방신학을 강조하며, 불교계는 해방불학(解放佛學)을 해서 자신들과 힘을 합쳐 민족을 미제국주의자로부터 해방하여 조국통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의 신부였지만 그의 신은 마르크스였다.
 
  민중불교를 내세우는 자들의 배후에 숨은 사부(師傅)는 붉은 신부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울 명동 성당에 출입하는 승려들이 많다. 진실로 종교간의 교류인지, 교육을 받는 건지 승려들이 마치 곳간에 생쥐 드나들듯 슬쩍이 드나든다. 어느 고명한 정치인은 명동성당에 늙은 용(老赤龍))같은 신부가 있어 마르크스의 조화술을 부린다고 논평했다. 노적용은 세계 최강의 조직 「바티칸」의 권력 때문에 손을 쓸 수 없었다고 술회했다. 어쨌든 노적용으로부터 특별전수를 받았는지, 아니면, 또 다른 붉은 신부가 사부(師傅)노릇을 하는 것인지, 보안상 알수 없으나, 명동성당을 들락거리던 그 승려들은 작금에 민중불교, 해방불학을 실천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광분(狂奔)하고 있다.
 
  이 지관 총무원장은 한국사회에서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고 있다. 칠순(七旬)의 중반을 넘어선 그에게는 방하착(放下着)과 자비실천 뿐이어야 한다는 것이 중론이다. 그러나 그는 경악스럽게도 종교편향이라는 구호를 외치며, 위정자와 대정부투쟁에 나섰다. 끝이 보이지 않는 투쟁이다.
 
 민주적 대선에서 압도적으로 승리한 이대통령을 종교편향이라는 구호로 대통령직에서 끌어내릴 수 있다고 확신하는 것일까? 도대체 대선은 왜 하나? 대선에 참여한 국민들은 무엇인가? 바보인가? 봉인가? 어쨌든 이총무원장은 9월10일 대구 동화사에서 열린 대구경북 범불교도대회 준비회의에서 마침내 「순교」를 거론했다.
 
 그는 '위법망구'와 '순교정신'을 거론하며 호법 의지를 강도높게 표현한 것이다. 저 월남패망 때 처럼 소신공양(燒身供養)할 수 있는 승려가 나서기를 촉구하는 것일까? 자신을 낳아주고 길러준 부모말도 듣지 아니하고 입산 출가한 승려들이다. 몇 명의 승려나 그의 순교론에 공감하여 실천할지 그것은 전망이 난망하다.
 
 그러나 기독교간의 갈등이 충돌화 되기를 바라는 족속은, 첫째, 사회혼란을 일으키는 것이 대남적화의 첩경이라고 믿는 북한당국이다. 둘째, 붉은 신부들이다. 그들은 불교계가 대정부투쟁과 기독교와의 투쟁을 부추겨 대리전을 하게 하여 어부지리(漁父之利)를 얻자는 속셈이다.
 
 불교계에 회의를 느낀 불교신자들은 대부분 천주교로 개종한다는 것을 붉은 신부들은 통계를 통해 너무도 잘 알고 있다. 불교계 투쟁의 전고(戰鼓)를 울리는 자리에는 언제나 신부가 나와 독려하듯 발언을 한다.
 
 승려 수경의 옆에도 언제나 문규현 신부가 독려하며 함께하고 있지 않는가. 붉은 신부들은 자신들이 교육시킨 승려들이 한국불교를 망치는 길로 인도한다는 안도감에 배를 안고 가가대소(呵呵大笑) 할 것이다.
 
 결론과 제언
 
  불교는 중생들에게 나(我)를 찾으라고 무수히 강조한다. 바꿔말해 남의 정신에 조종되는 삶을 살지 말고 제정신으로 살으라는 뜻이다. 불교계가 제정신이 아닐 때 불교는 멸망의 나락으로 추락하게 되어있다.
 
 팔만대장경이 있는데, 왜 붉은 신부들의 하수인, 종자, 제자노릇을 감수하는가? 속내가 참승려가 아니어서 그런가? 이조(李朝)에 들어 배불정책(排佛政策)을 당하여 불교가 5백년간 신고(辛苦)의 세월을 맞이한 것은 불교가 잘못되어서가 아니다.
 
 고려말의 승려들이 부처님의 율법을 어기고, 천인공노(天人共怒)할 부정부패속에 도당을 지어 창과 칼을 들어 범궐(犯闕)까지 하는 반정부 활동의 극치를 이룬 인과응보인 것이다. 고려사를 보면, 창칼을 들고 대정부 투쟁을 하다가 죽은 승려가 시산혈해(尸山血海)를 이루었다고 씌여있다.
 
 당시 위정자나, 지식인인 유생들과 백성들은 부정부패 속에 시주 밥 먹고 창칼을 들고 반정부 활동을 해대는 승려군(僧侶群)에 대해 환멸을 절감했다. 태조 이성계는 백성들에게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어야 했기 때문에 환멸의 대상인 승려들을 강제 환속시키고, 사찰의 재산을 몰수 하여 백성들에게 나눠줄 수 밖에 없었다. 수행자의 본분을 잃은 인과응보이다.
 
  작금의 불교계의 일부가 고려말의 타락상과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부정부패속에 도당을 지어 범궐하듯 대정부투쟁에 나서고 있다.
 
 이 문제를 풀 수 있는 제안은,
 
 첫째, 이지관총무원장의 회심(回心)이다. 이 지관 총무원장은 얼마남지 않은 임기에 혁명가적인 대정부투쟁보다는 내부의 부정선거와 부정부패를 개혁하고, 조계종 분규때 정치적으로 억울하게 중징계된 승려들의 대사면에 나서기를 촉구한다.
 
 둘째, 이명박 대통령이 신속한 법치를 해야 한다. 이대통령은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같은 때늦은 법치를 하고 있다. 예컨대 전경 420여명이 부상당하고, 경찰차 170여대가 부서지고 난 뒤에나 법치를 운위(云謂)한다. 이대통령은 여기저기 대정부투쟁의 불을 때늦게 진화하다 임기를 마칠 것인가? 박정희 대통령이 경부고속도로를 결행하듯, 대운하든 소운하든 그 무엇이든 국민경제 4만불을 위해 결행할 용기는 없는가? 사후약방문같은 법치에, 국민들의 조소(嘲笑)소리는 충천한지 오래이다. 신속한 법치를 거듭거듭 촉구한다.
 
 불교계 일부의 대정부투쟁이 한국불교 조직을 망치는 위태로운 일이 아니되기를 걸기대 한다. 모든 종교는, 서로 존중하며, 서로 용서와 화해속에 대한민국의 영광을 위해 단결해야 할 것이다.

 
 
  
김성욱 기자의 전체기사  
2008년 09월21일 23시1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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