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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군 살해에 연루된 공산당원 홍 장군



 문재인의 홍범도 장군 숭앙(崇仰) 역시 같은 흐름이다. 홍범도 장군 유해는 2021년 8월18일 국립현충원에 정식 안장됐고 문재인은 그에게 건국훈장 1등급 ‘대한민국장’을 수여했다. 당시 문재인은 “장군의 불굴의 무장투쟁은 강한 국방력의 뿌리가 되었다”며 “장군을 이곳에 모시며, 선열들이 꿈꾸던 대한민국을 향해 끊임없이 전진할 것을 다시 한 번 다짐한다.”고 열변을 토했다. 

 문화권력 자체가 왼쪽으로 기울어진 상황이니 홍범도 장군에 대한 비판적 고찰은 쉬운 일이 아니다.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6년 4월, 홍범도를 추모하며 1,800톤급 잠수함 ‘홍범도 함’을 진수하기도 했었다.   

 역사적 진실은 이렇다. 우선 홍범도 장군은 일제시대 만주 대한독립군 총사령관으로서 1920년 ‘봉오동 전투’를 승리로 이끈 장본인으로 알려져 있다. 또 ‘청산리 전투’에서도 제1연대장으로서 활약했다. 하지만 홍범도의 실체는 1920년 ‘봉오동 전투’ 다음 해의 ‘자유시 참변’에서 확인된다. 

 자유시 참변은 1921년 6월28일 소련 스보보드니(자유시)에서 소련 공산당인 적군(赤軍)이 한국 독립군을 포위해 학살한 사건이다. 당시 홍범도를 비롯한 한인 독립군은 한인사회당 이동휘의 선전·유도에 따라 자유시에 집결해 있었다. 모인 수는 4500여명. 이동휘의 한인사회당은 잘 알려진 것처럼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집요하게 공산화하려 했던 인물이다.

 이동휘는 소련으로부터 금화 100만 루블을 받고 한인 무장독립군을 소련 적군(赤軍)에 편입하려고 작정했던 상태였다. 금화 100만 루블이면 그야말로 천문학적 액수였다. 악랄한 음모를 까맣게 모르고 자유시에 집결한 한국 독립군은 민족주의·공산주의·무정부주의 등 다양한 성향의 조직이 혼재돼 있었다. 

 하지만 이들 조직 중 상당수가 소련군 편입을 거부하면서 사단이 생겼다. 급기야 소련군은 1921년 6월28일 기관총과 대포, 장갑차 등을 앞세워 무자비한 학살극을 시작했다. 

 어이없는 일이자만 홍범도는 소련군에 가세해서 독립군을 공격했다. 당시 희생된 한국 독립군 숫자는 700~800여명. 자유시 참변 이후 항일 무장독립군은 시베리아, 만주 등지로 흩어져 버렸고 항일 무장독립운동 역시 막을 내린다. 

 홍범도의 이후 행적은 더욱 역겹다. 자유시 참변 이듬해인 1922년. 소련 모스크바에서 제1회 극동 제(諸)민족대회(극동인민대표대회)가 열렸다. 온 세상을 공산화해 단일정부로 만들자는 취지였다. 홍범도는 한인 대표 56명 중 일원으로 선출되어 참석한다. 장세윤의 ‘봉오동·청산리 전투의 영웅 홍범도’에 따르면, 홍범도는 레닌과 단독 면담을 가졌고 금화 100루블,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권총을 선물로 받았다. 유다가 받은 은 삼십 냥이었다.   

 언제나 그렇듯 공산주의자들은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 소련 입장에선, 독립군 궤멸 이후 홍범도의 이용가치도 사라져 버렸다. 홍범도는 소련 공산당에 버림을 받는다. 홍범도와 생존자 2,000여 명은 적군에 흡수돼 해산돼 버렸다. 홍범도 역시 1923년 8월 시베리아 황무지의 집단농장으로 추방됐다. 1927년 소련공산당에 정식으로 입당했지만 다시 10년 뒤인 1937년 스탈린의 명령으로 중앙아시아로 추방당했다. 

 시베리아 지역을 여러 차례 가 본적이 있다. 곳곳에 한인 디아스포라의 눈물이 배어 있는 곳이다. 1930년대 연해주 땅에서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된 한인은 확인된 숫자만 17만1,781명. ‘일제(日帝)와 내통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삶의 터전이 뿌리째 뽑였다. 당시 강제이주 열차는 냉동고 같았다. 기차 안에서 얼어 죽고 굶어 죽고 병 걸려 죽은 이들의 시체는 달리는 차 안에서 던져졌다. 그렇게 죽어간 아이들, 노인들, 여인과 장정의 숫자는 2만5천 명에 달했다고 전해진다. 

 소련군은 우수리스크와 블라디보스토크의 중간 길목에 위치한 라즈돌리노예 역(驛)에서 기차가 출발하기 직전 수천 명의 한인 지도자를 살해했다. 지금도 하바로프스크 시립공동묘지 내 ‘기억사원’에는 신원이 확인된 4,302명의 고려인을 추모하는 비석이 세워져 있다. 

 불행 중 다행이었을까? 홍범도는 공산당원에다가 소련 협력자라 목숨을 건졌다. 그가 버려진 곳은 카자흐스탄의 시르다리야강 근처 사막지대였다. 1938년에는 남부의 한 도시에 있는 조선극장 수위장에 임명돼 1943년 10월 광복을 2년 앞두고 사망한다. 한때는 굵었고 말년에 가늘어질 대로 가늘어진 삶이었다.

 타인의 인생에 대한 평가는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당시 소련 땅인 연해주에서 살기 위해 공산당에 협력하고 목숨을 부지하는 것에 대한 평가 역시 마찬가지다. 눈보라 몰아치는 혹독한 시베리아에서 화물열차를 타고 있을 노인 홍범도를 생각하면 짠해진다. 

 그러나 마찬가지의 연민은 일제시대 한반도에서, 살기 위해 저항하지 않았던 수많은 조선인들에게도 적용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문재인 같은 비류(非類)는 공산당 계열엔 한 없이 관대한 눈길을 보내고 자유를 위해 싸웠던 이들에 대해선 가혹한 심판의 칼날을 겨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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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07월14일 21시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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