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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ssue 예수께서 이 나라를 살리실 것이다. Up 최종편집: 2월15일(수) 0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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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러운 진창에서 피어난 화려한 연꽃

 

 화려한 연꽃은 더러운 진창에서 피어난다. 조선이 그랬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태어난 이들은 믿음이 생겼다. 자신의 영혼을 살리신 주님이 이 나라도 살려줄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예표(豫表)적 인물이 있었다. 예수를 만나고 반세기 후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이 된 이승만(李承晩, 1875-1965)이다.

 다시 한 번 나에게 말한다. 고난이 꼭 저주는 아니다. 역사적 거인의 고난은 수천만 구원의 축복이 되기도 했었다. 이승만은 1899년 24세 때 고종 폐위(廢位) 사건에 휘말려 사형(死刑) 선고를 받았다. 어릴 때부터 신동과 천재로 불렸다. 협성회의보, 매일신문. 제국신문을 창간해 차세대 리더로 이름도 날렸다. 2년 전 배재학당 졸업식 땐 역사상 최초의 영어 연설도 했던 그다. 모여든 청중만 조선의 고위직 관료와 서양의 선교사 등 천여 명. 이승만은 촉망 받던 청년 지도자였다. 그런 그가 말 그대로 패가망신(敗家亡身)해 버렸다. 

 사형선고 이후 종신형을 확정받은 이승만은 한 세기가 바뀔 무렵, 예수를 만난다. 선교사 에디(Sherwood Eddy. 1871-1963)가 넣어준 성경을 읽으며 뜨겁게 만났다. 그가 했던 최초의 기도는 이랬다. 

“하나님 나의 영혼을 구원해 준 것처럼 이 민족을 구원해 주십시오(save my soul save my country)” 

 특이한 기도다. 살려달라, 도와달라, 꺼내달라는 기도가 아니었다. 영혼의 구원과 민족의 구원을 말했다. 숱한 신고(辛苦)를 겪은 뒤 하나님은 이 기도에 응답해 주셨다. 이승만의 증언이다.
“(···) 하나님께 기도를 했더니 금방 감방이 빛으로 가득 채워지는 것 같았고 나의 마음에 기쁨이 넘치는 평안이 깃들며 나는 완전히 변한 사람이 되었다. 내가 선교사들과 그들의 종교에 대해서 갖고 있던 증오감, 그들에 대한 불신감도 사라졌다. 나는 그들이 우리에게 자기들 스스로 대단히 값지게 여기는 것을 주기 위해 왔다는 것을 깨달았다(이승만의 영문 투옥경위서(Mr. Rhee's Story of His Imprisonment) 중)”

 이승만의 개종은 양반 출신 최초였다. 그가 겪은 성령의 체험은 뜨거웠다. 기쁨과 평안에 찼고 이승만은 감옥 안의 전도자가 되었다. 이원긍·이상재·유성준·김정식·홍재기·김린 등 양반 출신 정치범과 한성감옥 간수장 이중진 등 40여 명에 복음을 전했다. 감옥을 복당(福堂)으로 부르며 기도와 예배해 힘썼다. 영어사전도 집필했다. 그러기를 5년 7개월. 이승만은 극적인 사면을 받는다. 주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니 자유의 몸도 주셨다. 그의 자서전 초고 중 일부다. 
“(···) 죄수 한 사람은 간수들이 오는가 살피기 위해 파수를 섰었고 또 한 사람은 성경 책장을 넘겨주었다. 나는 몸이 형틀에 들어가 있었고 손에 수갑이 채워 있어 책장을 넘길 수 없었다. 그러나 나의 마음속 그 안위와 평안과 기쁨은 형용할 수 없었다. 나는 그 감옥에서 얼마나 감사했는지 잊을 수 없다. 6년 반 동안 감옥살이에서 얻은 축복에 대해서 영원히 감사할 것이다. 1094년 8월7일 나는 사면을 받고 다시 세상에 나올 수 있는 자유를 얻었다(이승만의 영문 자서전 개요(Rough Sketch : Autobiography of Dr. Syngman Rhee) 중)”

 이승만이 수감 됐던 한성감옥은 악명 높은 곳이었다. 팥밥과 콩나물, 소금국에 연명하며 자주 고문을 당했다. “축사에 가둔 소 떼처럼 이리저리 죄수들을 몰아부치는 곳”었다고 나온다. “바구니 속 겹쳐 밀치락 달치락 거리는 미꾸라지”처럼 버텨야 했었다(당시 수감자 김형섭(1878-1927)의 글 중). 이승만과 같이 갇힌 최정식·안경수·권형진·장호익·임병길 등은 이미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 버렸다. “승만아. 잘 있거라. 너는 살아남아 우리가 함께 시작한 일을 끝맺어다오” 최정식의 마지막 말은 이랬다. 이승만은 고백한다.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이란 고작 ‘가서 편안히 죽으시오’라고 고함을 질러주는 것이었다.”고 말이다.

 나라 위한 확신을 가지고 했었던 일이다. 돌아온 것은 세상의 정죄와 손가락질, 힐난이었다. 언제 끌려갈지 언제 처형될지 알 수 없는 공포와 두려움, 믿었던 이들에 대한 원망과 섭섭함, 배신감. 여기에 불결한 위생과 건강 문제도 덮쳤을 것이다. 옥 밖의 한성이 천국은 아닐지 몰라도, 그곳은 힌놈의 골짜기, 귀천의 갱도였다. 에스겔의 마른 뼈 같은 곳이었다. 

 절대적 고통은 절대적 신앙의 씨앗이 된다.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심이라(고후 1:9)” 그렇게 생명을 만나면 어둠은 빛으로 변한다. 

 이승만은 감옥 안 6년여 시간을 이렇게 적었다. “안위와 평안과 기쁨은 형용할 수 없었고” “그 감옥살이에서 얻은 축복(祝福)에 대해서 영원히 감사할 것이다” 육신은 형틀과 수갑에 채워져 있어도 영혼은 생명을 만났던 탓이다. 심령에 천국이 임하니, 변하는 세상을 보지 않고 불변의 저 천을 보게 되었다. 

 이승만은 출옥 후 기독교 국가가 조선이 가야 할 길임을 깨닫게 되었다. ‘옥중전도’, ‘예수교에 대한 장래의 기초’, ‘두 가지 편벽됨’, ‘교회경략’, ‘대한교우들의 힘쓸 일’ 등의 글을 썼다. “기독교 입국론(立國論)”을 설파했다. 혁명적인 세계관이었다. 이 뷰포인트는 1913년 ‘한국교회핍박’으로 구체화됐다. 그는 이 책에서 한국을 이스라엘과 비교하며 선교하는 나라의 사명을 이렇게 적었다.

“하나님이 한국 백성을 이스라엘 백성같이 특별히 택하여 동양에 처음 기독교 국가를 만들어 아시아에 기독교 문명을 발전시킬 책임을 맡긴 것이다...한국의 기독교인들은 벌써 제주도와 북간도, 만주, 블라디보스토크 등지와 북경에 이르기까지 선교사를 파송하여 활발히 선교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특별히 한국인들을 택하사 아시아에 기독교 문명의 기초를 잡게 하신 것이다...교회의 일에만 전력하면 한국인들이 일본과 중국을 모두 기독교로 인도할 것이다” 

 일본이 칼로 일어나 동양을 집어삼킬 때 이승만은 기독교로 동양을 발전시킬 비전을 꿈꿨다. 또 “이대로 얼마 동안만 계속하면 한국 백성의 장래 문명, 자유, 복락을 손꼽고 기다릴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절망감이 아닌 소망을 잡았다. 

 이승만의 기독교 입국론은 3·1운동 직후 1919년 4월7일 노령에서 가진 임시정부 첫 기자회견에서 공식적으로 선언됐고 임시정부 헌장과 1948년 5월31일 초대 국회에서 선포됐다. 그는 대통령이 되는 63세가 될 때까지 떠돌이 인생을 살았다. 그러나 그 지독한 불운함 속에서 신앙을 갖게 되었고 신앙의 자유가 꽃피는 나라를 세웠다. 김일성이 젊은 나이 북한 땅에 공산주의 유물론, 지상 지옥, 나락을 만들던 시대, 같은 반도 위에 이뤄진 일이다. 

 이승만이 세운 자유의 나라는 한국 교회로 하여금 꿈꾸게 하였다. 휴전선 이북의 혼명(昏冥)의 흑암을 거둬내 열방을 향해 뻗어갈 제사장 나라. 예수 다시 오실 길을 예비하는 한민족 교회의 길을 열었다. 고난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한 명의 고통이 수많은 구원의 밀알이 된 셈이다. 

 우리의 생각과 주님의 마음은 다르다. 이해할 수 없고 억울해 보이는 시련이 거대한 역사의 흐름을 이끄는 불기둥이 되기도 한다. 나는 다시 나에게 말하며 어두운 시대를 걷고 있는 많은 이에게 전한다. 형통이 꼭 축복이 아니다. 고난이 꼭 저주가 아니다. 주님은 우리보다 크고 위대하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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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06월08일 23시1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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