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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종교개혁과 루터
한국 교회가 썪었다고 실망하지 마십시오

루터와 칼뱅

아프간 상황이 갈수록 심상치 않습니다. 수도 카불에서 일어난 IS의 폭탄테러는 탈레반 이전에 이슬람이라는 정치종교의 흉측한 실상에 대해 많은 사실을 전달해 줍니다. 특히 한국의 현실과 무관치 않은 것은 일각에서 제기되는 불길한 예측들 탓입니다.


일각에서는, 중국 공산당의 영향력은 강화되고 한미동맹은 흔들리고 있는 한국 역시, 어느 순간 아프간처럼 무너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곤 합니다. 물론 아프간과 GDP 10위의 경제대국인 한국을 평면 비교하는 것은 무리한 일입니다. 교회가 없었고 망해간 1975년 월남과 2021년 아프간의 상황은 한국과는 많은 면에서 차이가 납니다.


또 어떤 나라건 위기(危機)와 기회(機會)는 공존하는 법입니다. 당연히 상황이 더 나빠지면 한국도 북한이나 중국처럼 자유의 박탈을 체험할 수도 있겠지만, 아직 기도하는 이들이 남아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것’은 아프간을 닮는 것이 아니라 아프간은 물론 중동과 이스라엘까지 복음화 되는 역전의 그 날입니다.


자. 그렇다면 한 민족의 성쇠, 파탄(破綻)과 부흥(復興)을 가르는 관건은 무엇일까요? 세상 사람들은 정치 개혁, 경제 개혁, 조세 개혁, 국방 개혁 등 수많은 개혁의 필요성을 말합니다. 하지만, 실은 진정한 개혁의 본질은 언제나 종교의 개혁, 예수혁명입니다.


종교개혁, 예수혁명 없는 개혁은 세상 군왕의 성쇠에 불과했을 뿐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신라가 고려로 고려가 조선으로 바뀌었다고 민초들의 삶이 달라졌습니까? 풍년이 왔을 때 잠시의 평화가 있었을 뿐 태평성대에도 절대다수 백성들은 상놈 신세였습니다. 가난과 굶주림은 숙명이었습니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세종 당시 세종의 아들 영응대군의 노비 수가 1만 명에 달했다고 나옵니다. 고위직 관료인 정1-2품은 노비 130명, 3-6품은 100명, 7급 이하는 80명이었습니다. 그러나 통상 고위직 관료는 500~600명이었고, 하위직 관료는 200~300명에 달했습니다. 17세기 윤선도는 노예가 700여명이었죠.


인구 대비로 따지면, 조선이 태평성대였을 때조차 국민의 30~40%가 노예였습니다. 미국의 경우엔 1850년 미국 남부의 대 농장주 100명을 꼽으면(34만7,500에이커 이상) 통상 1,800명의 흑인 노예를 부리고 있었다고 나옵니다. 그나마 흑인 노예는 굶주리지는 않았습니다.


헌데 조선왕조실록에는 굶어죽는 정도가 아니라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은 기록까지 자세하게 나옵니다. <현종실록 19권 현종 12년 1671년 3월21일. 충청도 연산 순례의 인육 먹은 사례. 숙종실록 30권 숙종 22년 1896년 2월5일. 평안도 이어순의 인육 먹은 사례. 숙종실록 31권 숙종 23년 1897년 4월29일. 평안도 금춘·예합의 인육 먹은 사례>


현종실록을 좀 더 인용해 봅니다. <집에 조금이라도 양식이 있는 자는 곧 겁탈의 우환을 당하고 몸에 베옷 한 벌이라도 걸친 자도 강도의 화를 당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무덤을 파서 관을 부수고 시체의 염의를 훔치기도 합니다.(현종실록) 감영에 가 봐도 그늘에서 얼어 죽은 사람이 190명이 되고 갓난아이를 도랑에 버리고 강물에 던지는 일이 없는 곳이 없습니다.> 철학자가 다스리던 조선에선 틈만 나면 ‘개혁’을 이유로 사화, 당쟁이 벌어졌지만, 국민의 삶은 짐승과 귀신의 중간에 있었습니다.


그러다 구한말 복음을 들고 온 선교사들에 의해 진정한 종교의 개혁, 예수혁명이 일어납니다. 그 열매가 대한민국의 건국이었습니다. 역사책을 좀 더 들여다보면, ‘교회가 있는 나라이냐 없는 나라이냐’가 너무나 중요하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교회다운 교회, 진정한 회개의 불이 붙은 교회가 있을 때 하나님은 그 의인 10명을 보시고 변화를 만들어 주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지금 한국에 가장 절실한 것, 한국이 적화통일이 되느냐? 남미식(式) 몰락을 하느냐? 북한·중국 속에 빨려 가느냐? 심지어 아프간 같은 꼴이 나느냐의 관건은 종교개혁입니다.


좀 더 자세히 말씀드려 봅니다. 근대에 일어난 수많은 혁명 중 대표적 성공 사례로 저는 두 가지를 들고 싶습니다. 하나는 미국의 건국 혁명 또 하나는 대한민국의 건국 혁명입니다. 헌데 이들 두 개의 혁명적 사건 모두 종교 개혁의 열매들이었습니다.


중세의 구각을 깨고 일어난 루터와 칼뱅의 종교개혁은 유럽에 변혁의 토대를 만들어 냅니다. 그러나 프로테스탄티즘은 여전히 강고한 로마 가톨릭과 충돌하고 영국으로 불이 옮겨 붙습니다. 그러나 영국의 프로테스탄트 역시 로마 가톨릭과 완전한 단절에 실패한 국교회에 밀려 메이플라워를 타고 미국에 청교도 나라를 세우게 됩니다.


가난과 싸워 이기긴 쉬워도 풍요와 싸워 이기긴 쉽지 않습니다. 미국의 프로테스탄트는 대륙의 광대한 풍요에 젖으며 타락해 갑니다. 그리고 다시 두 차례의 대각성 운동이 일어나 회개의 불이 옮겨 붙습니다. 그리고 2차 대각성 운동의 불을 받은 언더우드, 아펜젤러, 모펫, 기포드 등 구령의 열정에 불타는 숱한 엘리트 청년이 아시아를 찾습니다.


그리고 가난과 전쟁, 우상숭배로 인한 숱한 자주와 질곡에 젖어 살던 조선인들이 평양과 원산의 대(大)부흥 운동을 거치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잉태돼 갑니다. 대한민국이라는 새로운 피조물로 말입니다. 진정한 회개의 불은 국민의 의식을 바꾸게 됩니다.


일제 35년은 모진 수모와 고난의 시간들이었지만 거친 연단의 시기를 거치며 1948년 5월31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하며 나라를 시작케 됩니다. 종교개혁을 통해 드디어 정치·경제·조세·국방 등 일련의 개혁을 완성한 대한민국의 건국 혁명으로 완성되는 것입니다.


선교하는 통일한국, 주님의 민족적 부르심을 이루기 위한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철저한 회개와 자기 부인을 한 겸손한 자들이 연합해 기도할 때 주님께서는 놀라운 변혁을 일으키실 것입니다. 상황을 탓하지 마십시오. 환경을 탓하지 마세요. 한국 교회가 썩었다고 실망하실 필요도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나 자신, 여러분입니다.


2

앞에 이어 말씀을 이어가 봅니다. 지금 한국에 절실한 것은 종교개혁, 그를 위한 나의 회개, 우리 자신의 회개입니다. 여러 분 루터의 종교개혁이 일어날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중세 천 년간은 분명 경건했던 시대입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론 하나님의 이름으로 천년 동안 온갖 악행들이 저질러진 때였습니다.


11세기에서 13세기까지 진행된 십자군 전쟁(1095년부터 1291년까지 간헐적으로 일어난,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한 레반트 지역의 지배권을 놓고 일어난 전쟁)은 성지 회복이라는 명분 아래 저질러진 잔혹극이었습니다. 십자군은 성지 회복 대신 하나님의 이름으로 무슬림과 함께 유대인 학살이 반복됐습니다.


버틀란트 러셀은 “십자군 이전 유대인은 유럽 전역에서 동양 물품의 무역을 거의 독점했지만 십자군 이후 유대인을 박해한 결과 무역의 대부분은 그리스도교도, 즉 로마 가톨릭이 장악했다(러셀의 서양철학사. 557p)”고 말합니다. 요컨대 세상권세를 위해 히틀러의 홀로코스트에 필적하는 악행을 자행한 것입니다.


이는 유대인이 복음을 접하지 못하게 만들고, 그들로 하여금 프리메이슨 같은 반(反)기독교 인본주의 흐름에 천착케 하는 도구가 됩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컬으며 사탄에 쓰임을 받았던 셈입니다. 1212년엔 어린이들 중심으로 십자군이 만들어져 아프리카 노예 상인에 팔려가는 일까지 벌어집니다.


중세의 종교재판 역시 유대인과 정치적 반대자, 심지어 은사자들을 고문하고 살해하는 도구가 됐습니다. 이 음습한 재판은 공산주의 인민재판처럼 끔찍했습니다. 역사책에 나온 기록들은 이렇습니다.


<물 끓는 솥에서 돌멩이 반지를 꺼내고 상하지 않으면 무죄, 상하면 유죄. 뜨거운 쇠를 듣고 걷고 나서 다치면 유죄, 안 다치면 무죄. 양손을 묶어 물속에 던진 뒤 물에 뜨면 무죄, 가라앉으면 유죄로 인한 즉결 처형.>


중세 천년 종교재판을 통해, 곧 하나님의 이름으로 살해된 이들은 통상 150만 명에서 200만 명 이상으로 추정됩니다. 천 만 명 이상으로 추정하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말 그대로 제노사이드, 대량학살 수준입니다. 그 중에 마녀사냥으로 죽임당한 사람들은 50만 명에 달한다고 합니다.


마녀가 50만 명이나 있었나요? 아닙니다. 방언을 한다거나 환상, 계시, 예언의 은사가 있다거나 괴짜 과학자들, 인본주의자들 그리고 돈은 있지만 나라가 없던 유대인들이 불태워집니다. 그리고 이 가증한 일들을 주도한 로마 가톨릭은 철저하게 썩어갑니다.


중세의 교황들은 정부를 두는 일이 많았습니다. ‘스페인의 건달’로 불리는 교황 알렉산더 6세(Pont 1492~1503)는 여러 정부(情夫)를 통해 사생아를 낳았고 당시 수도원은 동성애 소굴로 타락해 갔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급기야 돈을 받고 죄를 사해 주는 면죄부를 팔아 치부를 하기 시작합니다.


악에 대한 저항은 항상 두 가지 형태를 취하곤 합니다. 하나는 인간의 방식, 다른 하나는 주님의 방식입니다. 로마 가톨릭의 타락은 14세기경부터 그리스·로마의 인본주의를 통해 기독교를 극복하려는 르네상스 운동을 만들어 냅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빚어진 타락을 없애기 위해서 하나님의 이름 자체를 지우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방식은 달랐습니다. 34세의 젊은 루터(1483-1546)를 들어 사용합니다. 루터로 하여금 1517년 95개조를 발표해 교황의 권력에 맞서게 한 것입니다. 이후 로마 가톨릭과 결탁한 프리드리히 제후(작센)는 1521년 Worms 의회를 열어 루터에게 이단칙령을 내리고, 1529 Speyer 의회를 열어 이 칙령을 강화합니다. 이때 제후·제국 도시 14인이 저항하며 드디어 프로테스탄드가 탄생합니다.


루터가 외친 것은 무엇입니까? 첫 번째는 솔라스크립투라, ‘오직 성경’입니다. 성경은 그 자체로 충족하고, 자족하고, 명확하고, 명료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솔라피데, ‘오직 믿음’입니다. 하나님 그 자체인 말씀을 믿어야 한다는 것이죠. 이 믿음으로 죄인(罪人)인 우리가 의인(義人)이라 칭함 받는다는 것입니다(이신칭의).


그 유명한 이신칭의. 루터가 젊은 시절 비텐베르크 성당에서 이른바 ‘탑의 체험(tower experience)’을 통해 깨달은 로마서 1장17절 말씀처럼 말입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롬1:17)’


의인으로 칭함 받은 죄인들은 하나님과 직접적 관계를 가질 수 있게 됩니다. 교황과 사제의 중재는 더 이상 필요 없습니다. 모든 이들이 제사장적 사명을 수행하며(만인제사장론) 드디어 하나님의 선하고 기쁘고 온전하신 뜻을 이룰 수 있게 됩니다. 죄인으로 저주받고 심판받던 인생은 더 이상 없습니다. 아버지의 뜻을 하늘에서처럼 땅에서 이룰 수 있습니다.


제사장적 사명, 주님의 일은 더 이상 교황, 사제 이른바 ‘주의 종’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학자들은 이것을 이른바 ‘성속(聖俗)의 중세적 2분법을 거부했다’고 평가합니다. ‘세속(世俗) 영역이 신성화됐다’고도 말합니다. 사실 어려운 말을 인용할 필요도 없습니다.


성령께서 우리 심령 안에 오시어 착한 일을 시작하셨기에 모든 이들은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다고 한 것입니다. 루터도 vocatio, 소명은 수도사만의 삶이 아니라고 선언합니다. 수도사의 일이건 집안일이건 우리의 주어진 환경은 주님이 맡기신 사명이라는 것입니다.


거창하고 그럴싸한 거대한 주님의 사업을 말하는 것만이 주의 일이 아니라 가정에서 자녀를 올바로 양육하는 것 또한 주의 일이라는 것입니다. 칼뱅은 이것을 다시 정리해 주님의 부르심, calling이라고 칭합니다.


주의 영을 받은 모든 이가 각자의 삶의 환경 속에서 주님의 사명, vocatio, calling에 최선을 다하는 정신은 근대 자본주의의 기반을 만들어 냅니다. 인쇄술 발달로 성경 보급이 활발해지면서, 일반 대중도 성경을 읽으며 이러한 정신을 확인케 됩니다.


‘아 그렇구나. 주님이 로만칼라를 입은 사제만 쓰시는 게 아니라 온종일 감자를 깎고 있는 나의 인생도 쓰시고 계시구나. 실패한 것 같은 나의 삶에도 주님의 부르심이 있는 것이구나. 하루 종일 밥만 하고 아이들과 실랑이하는 나에게도 하나님의 콜링이 있구나.’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하지 아니하리라(베드로후서 1:10) 일반 대중, 일반 성도들은 각자의 환경에서 주님의 부르심을 발견하고 최선을 다할 수 있게 됩니다.


그렇게 감자 깎는 인생은 감자 깎는 기계를 발명해 냅니다. 실패한 인생은 또 다시 도전해 성공을 이루고, 주부들은 자녀들을 성경적으로 양육해 갑니다. 그리고 이뤄낸 축복, 성공, 결실은 유희와 쾌락을 위해 쓰는 게 아니라 근검, 절약, 청빈하게 살아가며 다시 하나님을 위해 사용합니다. 이 모든 열매를 주님이 허락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루터가 길을 터 준 프로테스탄트의 정신적 에너지는 가난을 성경적 삶의 기준으로 삼았던 중세의 틀을 뛰어 넘습니다.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벌어서 열심히 복음을 전하는 근대 자본주의 토대를 만들어 냅니다.


영국의 역사가 토마스 칼라일은 “루터가 없었다면 대(大)격변의 원천은 자궁 속에서 소멸했을 것”이라며 특히 “미국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라고 평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종교개혁의 불이 유럽과 영국을 거쳐 아메리카 대륙에 떨어져 미국이 만들어 졌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선교하는 통일한국의 거룩한 길을 터야 할 우리들에게, 역사는 명확한 가르침을 전달해 줍니다. 지금 한국에 절실한 것은 다른 어떠한 개혁 이전에 종교 개혁입니다. 종교 개혁을 위해 우리 각자가 루터가 돼야 합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깨닫고 오직 성경을 믿음으로 우리의 죄와 피 흘리기까지 싸워서, 항상 기뻐하며 모든 일에 감사하며 쉬지 않고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내가 기도할 때에 기억하며 너희로 말미암아 감사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엡 1:16-19)  

  
김성욱의 전체기사  
2021년 09월05일 01시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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