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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챈트먼트의 빙원


며칠 동안 유튜브 업로드를 못 했습니다. 얼굴이 까맣고 말라서, ‘아팠던 것 아닌가’ 하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그건 아니고요. 올 해 17살인 아들과 산에 갔다 왔습니다. 제가 거창한 거대담론을 말할 뿐 저 자신이나 가족 얘기를 공개적으로 잘 하지 않습니다만, 사적인 이야기를 앞으론 좀 더 자주 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들과 산행을 한 곳은 제가 현재 있는 미국 워싱턴 주(州)에 위치한 The Enchantments라는 트레일 코스입니다. 인챈트먼트라고 하면 황홀감, 황홀경이라는 뜻인데요. 사진 촬영이 취미인 저희 아들이 거의 1년 가까이 여기를 가자고 노래를 불러서 이번에 기회를 갖게 된 것입니다.


인챈트먼트는 아마 미국 사시는 분들도 잘 모르는 곳일 것입니다. 하지만 전문 산악인들 사이에서는 미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산행코스로 이름난 비경입니다. 해발 2,597미터의 봉우리를 올라가면 펼쳐지는 빙하와 호수, 계곡, 평원 지대이죠. 인터넷으로 검색해도 자료가 잘 안 나오니 감이 안 오실 텐데요. 일단 한국의 지리산, 설악산, 한라산을 합쳐놓은 것처럼 거대합니다.


제가 2년 전에도 아들과 설악산 공룡능선을 당일 코스로 넘다가, 거의 죽다가 살아난 적이 있는데요. 인챈트먼트를 갔다 오니 공룡능선의 험준함에 3배 정도를 곱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산을 하나 오르면 콜척레이크라는 옥빛호수가 나오고 여기서 다시 45도 가량의 돌산을 한 나절 오르면 드디어 인챈트먼트 정상에 도착합니다.


그 때부터 산 염소와 희귀 새들이 나오는 빙하, 호수, 계곡, 평원을 또 한나절 걷게 됩니다. 이곳은 미국의 국립공원, 주립공원도 아닌 윌더니스, 말 그대로 오지 중의 오지입니다. 로또 같은 추첨을 해서 당첨이 돼야 산에서 캠핑을 할 수 있습니다. 당첨이 안 되면 하루에 이곳을 넘어야 하는데, 마라톤 선수 정도의 체력이 아니면 넘기 어려운 곳입니다.


아마 이 이야기를 들으시는 분들은 사춘기 아들과 캠핑 가는 저를 부러워하시는 분들이 많으실 겁니다. 그러나 사실 저는 가족들에게 나쁜 아빠, 나쁜 가장이었습니다. 또 하나님 앞에서 죄인 중의 죄인입니다. 더 심각한 것은 이런 괴수가, 좋은 아빠, 좋은 가장 그리고 의인인 양 착각하고 살아온 것입니다. 세상을 향해 바른 말, 옳은 말, 착한 말을 하기 때문일 겁니다.


어떤 분이 제 유튜브 영상 밑에 ‘당신은 맨 날 세상을 비난하며 의로운 양 하는데 정말 의인이냐?’고 댓글을 다셨던데, ‘완전하신 말씀’ 앞에 저는 정말 할 말이 없는 사람입니다. 술 마시고 음란하고 사악해서가 아니고요. 옆의 사람을 챙기지 못하는 나쁜 아빠, 나쁜 가장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잘못을 갚기 위해 뼈가 부서지는 한이 있어도, 아들이 기뻐하는 산행에 동행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제가 이런 이야기를 드리는 것은 저의 회개와, 또 저와 유사한 수많은 한국 아버지들이 함께 회개하기 위함입니다. 한 가정의 아버지가 죄와 싸워 이기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그 아버지를 통해 기적을 만드실 수 없습니다. 당연히 나라와 민족도 회복될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제게, 또 이 영상을 보시는 분들의 기도를 들어주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안에 불법(不法)이 죽어야 하는 것입니다.


맞습니다. 저는 나쁜 아빠, 나쁜 가장이었습니다. 한 번도 안정적 직업을 가져본 적이 없습니다. 21년 북한 해방을 외치며 소위 주사파 세력과 싸웠고 수많은 소송과 공격을 받아왔습니다. 지금이야 공론의 장에서 퇴출돼 잠잠합니다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경찰, 검찰, 법원에 불려 다니기 일쑤였습니다. 주사파, 동성애 단체, 이단 기독교 등으로부터 걸린 민사소송가액만 10억 원이 넘습니다.


의인은 고난이 많다고 합니다. 일제시대 독립운동가도 그랬다고 최면을 걸곤 했습니다. 그러나 그 가족은 무슨 잘못이 있습니까? 탈북여성을 살리라고 외치면서 정작 자신의 아내는 죽이고 있다면 그는 하나님 앞에 어떤 책임을 져야 합니까? 그럼에도 입만 열면 나라와 민족, 그리고 하나님을 말하고 거창한 말들을 해대니, 저는 주변에서 시들어가는 사람들을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저는 나쁜 아빠, 나쁜 가장이었습니다. 이 부분은 한국의 많은 아버지와 비슷할 것 같습니다. ‘가족을 위해서 열심히 일을 했다’는 명분으로, 자녀와 가족을 먹이고 입히는 것으로 모든 책임을 다 했다고 착각했습니다. 마치 반려견을 피딩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먹을 것이 없고 입을 것이 없어 가족의 생계를 꾸리는 것이 가장의 유일한 책임이었던 근대화 시기 우리의 아버지 세대처럼 말입니다.


저도 한국의 많은 아버지처럼 성실한 가장이었습니다. 물리적으로는 방임한 적은 없습니다. 그러나 정작 인지적(認知的)으로, 정서적(情緖的)으로, 아이가 정상적 발달을 하는데 필요한 애정표현이나 적절한 지지를 해주지 못할 때가 많았습니다.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한 명확한 경계를 정해주지 않았습니다. 밖에서 죽기 살기로 싸우다보니 집에서는 삶은 배추처럼 늘어져 있을 때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상의 감정적 방임이고 양육의 방기였습니다. 남 돕기 좋아하고 화끈한 호인(好人)인양 행동해도, 가정에서 가족들은 말라가고 있었습니다. 선(善)을 말했지만 누군가에겐 위선자였습니다. 이것은 다른 가족 구성원의 불만과 분노의 감정으로 누적될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 남성 중에 그런 분들, 꽤 많죠?


그런데 자녀가 사춘기에 들어서면, 무례하고 예의 없는 모습에 놀라게 됩니다. 남자 아이들은 감당 못할 공격성을 보일 때도 있습니다. 그러다 뒤 늦게 양육한다며 혼을 내고 폭언을 하기도 합니다. 특히 기독교인들, 심지어 목사님들은 “매를 아끼는 자는 그의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잠언13:24)”는 말씀을 인용해 잘못된 말과 행동 앞에서 매를 드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실은 현재의 못 마땅한 자녀의 모습은 아버지의 소극적 방임 또는 적극적 방임이 만들어 낸 거울임을, 열매임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저도 아이의 버릇없는 행동이 아이의 탓이 아닌 저의 탓임을 깨닫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자녀의 모습은 부모의 특히 아버지의 인지적·정서적·감정적 방임에 대한 반응일 뿐입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깨닫지 못합니다.


특히 목사님들이나 저처럼 목사에게 바르게 살라는 충고를 하는 특수한 직종의 사람은 이런 잘못을 깨닫기가 쉽지 않습니다. 바른 말을 하니 자신은 바르게 산다고 착각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족이건, 교회이건, 공동체건 문제가 생기면 그 사람의 반(反)성경적 행태에서 원인을 찾습니다. 원인을 제공한 자신은 탓하지 않습니다. 정죄자, 심판자가 돼버리는 것입니다. 무서운 일입니다.


최악 중의 최악은요. 많은 아버지들이 가족을 위해, 심지어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열심히 일했다는 핑계로 평소 자녀에게 적절한 기도와 고민과 연구와 양육을 하지 않고선... 자녀의 모난 행동이 보이면 ‘해(害)를 주는 말과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바로 화내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은 명확합니다.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지니 낙심할까 함이라(골 3:21)”


얼마나 많은 아비들이 자녀를 노엽게 합니까? 원인은요? 바로 앞 절에 나오는 순종하지 않기 때문에요? 왜 순종하지 않습니까?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딤전 5:8)” 돌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주리지 않게 했다고요? 돈을 벌어 줬다고요? 아닙니다. 감정적으로, 정서적으로 돌보지 않았습니다. 그리곤 자녀와 가족 탓을 했습니다.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시간이 흐르면 이 나쁜 아빠, 나쁜 가장과 자녀, 가족의 관계는 단절될 수밖에 없습니다. 고집스럽고 괴팍한 할아버지! ‘나는 바르게 살았다’는 확신만 남은 초라한 죄인이 돼버릴 것입니다. 아무리 성경을 많이 알고 아무리 기도를 많이 해도, 누군가에게 줬던 이 상처는 올무가 돼 그 자신의 인생에 기적을 막아 버릴 것입니다. 기적을 경험치 못하는 아버지는 그가 간절히 바라던 나라와 민족, 교회에서도 기적을 만들어내지 못할 것입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주사파와 싸우기 이전에 제 안의 죄와 피 흘리기까지 싸우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자녀의 모습은 바로 아버지가 뿌린 씨앗의 열매입니다. 기다리고 오래 참고 인내하며 기도해야 할 문제입니다. 자녀에게 화내는 것은 자녀의 비(非)도덕적 행동이 문제가 아닙니다. 아버지의 반성경적 죄악이 문제입니다. 폭언도 폭행인 줄 모르는 우행과 어리석음입니다.


인챈트먼트의 웅장한 빙원은 저의 비참한 죄성을 비춰줬습니다. 배낭이 찢어질 정도의 혹독한 산행이었지만, 아들에게는 장쾌한 추억을 만들어줄 수 있었습니다. 산꼭대기에서 아들과 함께 한 기도는 다시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유일한 구원자이심을 깨닫게 해 줬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우리는 살 수 없는 자들입니다. 예수의 피가 아니면 저희는 새롭게 될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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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09월05일 00시4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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