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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믿지 않는 신학자들
성경무오성에 대한 변증


교회마저 동성결혼을 인정하거나 동성애를 수용하고 시한부 종말론, 극단적 종말론 등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도 거짓과 미혹이 판을 치는 이유는 실은 성경에 답이 있습니다. 다들 기독교인이라고는 하지만, 말씀이신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 신뢰가 없기 때문입니다. 더 쉽게 말해 성경을 부분적으로 믿고 또 부분적으로 믿지 않는 크리스천들이 넘쳐나기 때문입니다.


또 역설적으로, 수많은 종교적 부흥(復興)과 영적인 각성(覺醒)은 성경에 대한 절대적 믿음의 회복을 통해 가능했고 마지막 때 주님이 원하시는 거룩한 부흥 또한 성경에 대한 절대적 믿음의 회복을 통해 가능할 것입니다. 실제로 독일의 마틴 루터는 종교개혁을 통해 ‘솔라 스크립투라’, 즉 오직 성경의 교리를 강조했습니다. 성경이 우리 신앙과 신학의 기준이 돼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솔라 그라티아(오직 은혜)’, ‘솔라 피데(오직 믿음)’가 더해지고 프랑스의 존 칼빈에 의해 ‘솔루스 크리스투스(오직 그리스도)’, ‘솔리 데오 글로리아(오직 하나님께 영광)’가 더해져서 마침내 ‘종교개혁의 5대 강령’이 되었습니다. 즉 종교개혁의 가장 중요한 교리는 성경에 대한 절대적 믿음이었던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보면요. 마틴 루터의 시대에 ‘솔라 스크립투라’는 중세 교회의 전통, 교회의 회의, 교황의 도전에 맞서 성경을 그리스도인의 유일한 최종 권위로 삼고자 하는 생각에서 등장했습니다. 성경보다 교부들의 가르침과 교리를 더 중시한 로마 가톨릭에 맞선 종교개혁자들은 오직 성경만을 교회의 진정한 권위로 확립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성경에 오류가 없으며 일점일획도 틀리지 않기에 이 성경이면 정말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신학에서는 축자영감론이라고 하죠? 즉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된 성경은 한 글자도 한 문장도 틀림이 없고 오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은요. 세상의 철학과 사상을 동원해 해석을 비장해 성경을 왜곡하고 비틀고요. 개인의 영적 체험을 강조하며 성경을 무시할 때가 많습니다.


예를 들면요. 인간적 사랑을 앞세워 동성애·낙태를 정당화하는 소위 진보 성향 기독교, 주님이 주신 환상, 계신, 예언을 이유로 설교자 말에 사도적 권위, 즉 성경적 권위를 부여하고 성경에 없는 주장을 하는 신사도 계열 기독교 등은요. 양극단으로 치우쳐 있지만 하나같이 솔라 스크립투라, ‘오직 성경’, 성경에 대한 절대적 믿음이 결핍돼 있습니다.


좀 학술적 이야기가 될 수 있습니다만, 오직 성경의 역사를 잠시 말씀드려 보려고 합니다. 이른바 성경의 무오성은 칼뱅주의 신앙을 담고 있는 개신교 신앙고백인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The Westminster Confession of Faith)을 통에 1648년 확인된 바 있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제 1장은 ‘성경에 관하여’에 대한 고백입니다. 이 고백 시작은 이렇습니다.


본성의 빛과 창조사역 및 섭리에 하나님의 선하심, 지혜, 그리고 권능이 잘 나타나 있어 아무도 하나님을 모른다고 핑계할 수 없다(롬2:14-15, 1:19-20, 시19:1-3; 롬1:32, 2:1)”고 말한 뒤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히1:1)’라는 말씀처럼, “주께서는 여러 때에 여러 모양으로 교회에 자신을 계시하시고 자신의 뜻을 선언하시기를 기뻐하셨다”고 적고 있습니다.


이어 “그 후에는 진리를 더욱 잘 보존하고 전파하시며, 또 육신의 부패와 사탄과 세상의 악에 대항하여 교회가 더욱 더 공고히 서고 더욱 더 위로를 받도록 하기 위하여 동일한 진리를 온전하게 기록하시기를 기뻐하시었다(잠22:19-21; 눅1:3, 4; 롬15:4; 마4:4, 10; 사8:19, 20)”며 “그것이 성경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이유이며(딤후3:15; 벧후1:19). 하나님이 이전에 자기 백성에게 자신을 계시하시던 예언의 방법들은 오늘날 중단되었다(히1:1, 2).”고 적고 있습니다.


*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또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히1:2).


또 “성경”은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딤후 3:16)’라는 말씀 등을 인용하며 “성경의 권위는 어떤 사람이나 교회의 증언에 의거하지 아니하고 오직 진리 자체이시며, 그 책의 저자이신 하나님에게 전적으로 의거한다.(벧후1:19, 21; 딤후3:16; 요일5:9; 살전2:13)”고 하고 있습니다.


이어 “우리가 성경의 권위를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이라며 “성경의 무오(無誤)성”에 대해 설파하고 있습니다. 이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서는 1643년 영국 의회가 당시 국왕이던 찰스 1세와 의회와의 내란인 청교도 혁명(1640∼1660) 중에 영국 교회가 공통으로 따를 수 있는 교리 등의 기준을 수립할 필요를 느끼고 웨스트민스터 총회를 소집해 마련된 것입니다.


당시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교회 총대들과 의원, 정치인 등으로 구성된 “학식 있고 거룩하며 분별력 있는 신학자들”이 성공회 교회인 웨스트민스터 대성당에 모였고, 이 회의는 5년 동안 지속되었습니다. 회의의 결과로 신앙고백서가 작성되었는데 이것이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입니다.


이 회의의 결과로 신앙고백서뿐만 아니라 웨스트민스터 대(大)요리문답과 웨스트민스터 소(小)요리문답 또한 작성됐고 이듬해 1648년 영국 의회에서 공인됐습니다. 또 이 문서들은 미국으로 건너간 청교도들에 의해 미국 장로교회(PCUSA)의 교리적 표준문서로 인정되었고, 한국에는 장로교 선교사들이 가지고 들어와 한국 장로교 교회의 표준문서로 통용되고 있습니다.


자 그런데요. 계몽철학 이후 산업혁명과 1차, 2차 대전 등을 거치며 온갖 인본주의 철학들이 신학에도 밀려오기 시작하죠. 이러다보니 1970년대 미국연합장로교회(UPCUSA)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포기하고 칼 바르트의 화해신학적 교회론을 구성하는 비정통적이며 비개혁주의 신조인 이른바 ‘1967년 신앙고백서’를 발간합니다.


이거 좀 어려워지는데요. 아마 자유주의 신학을 들어보신 분들이 많을 겁니다. 이 슐라이에르마허 같은 인물이 대표적인데요. 저도 한창 방황하던 대학교 1학년 때 ‘예수는 가장 투명했던 사람’이라는 슐라이에르마허의 주장을 듣고 ‘와 멋있다’고 느꼈던 기억이 나는데요. 어쨌건 이 자유주의는 말 그대로 성경을 도덕책 정도로 봅니다. 예수님도 훌륭한 성인 중 한 명이 되고요.


가령 위인으로 알려진 슈바이쩌 같은 이도 예수님을 단지 ‘스스로가 메시아라는 착각을 하며 살았던 인물’로 봤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결국 자신의 착각을 깨닫고 ‘엘리 엘리 사막다니’라고 하며 후회했다고 생각했죠. 그러니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받을 수 없고 도덕적으로 선한 행위를 해야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결론에 이릅니다. 슈바이쩌가 죽을 고생을 하며 아프리카에서 의료봉사를 한 것도 이런 데서 기인합니다.


자유주의 신학은 한국의 좌경화된 기독교를 생각하시면 쉽게 이해가 되실 겁니다. 이들은 세계선교가 아니라 사회선교가 중요하다고 여기죠? 다음세대를 세계선교사가 아니라 사회선교사로 양육합니다. 실은 교회세습반대 투쟁이나 각종 정치 이슈, 세월호·박근혜 대통령 탄핵 등 온갖 시위현장에서 데모하는 운동가들을 기르는 것인데요.


텐트치고 농성하는 사람들을 보면요. 의외로 목사나 전도사, 기독교인이 많습니다. 소수자·약자의 보호를 이유로 이른바 투쟁하는 소윚 진보적 그리스도인들인데요. 예외 없이 동성애·낙태에 문이 열려 있습니다. 왜 그런고 하니요. 바로 신학교에서 자유주의 신학교육을 많이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온갖 신학서적·신앙도서들은 많이 봐도 성경은 잘 보질 않는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자 칼 바르트 얘기를 하려다 이야기가 좀 샜습니다. 칼 바르트, 유명한 신학자죠. 대형교회 목사님들이 이 칼 바르트 인용하는 경우가 많던데요. 이 사람도 원래 자유주의 신학을 공부했습니다. 그러다 제1차 세계대전 앞에 침묵하는 자유주의 신학에 실망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높이고 존중하는 이른바 신정통주의(neo- orthodoxy) 신학 사상을 가지게 되었죠.


뭐 지금 신학이 위기라고 주장해서 ‘위기의 신학’이라고도 부르는데요. 어쨌건 바르트 역시 성경을 보는 관점에서 자유주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성경을 있는 그대로 믿는 게 아니고요. 바르트는 사람이 성경을 읽을 때 오는 감동, 즉 계시가 중요하다고 주장합니다. 즉 읽는 사람, 말하는 사람의 해석이 더 중요해지죠?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다’라고 할 때 그 ‘이다’는 여러 분이나 저 같은 이들이 생각하는 성경의 무오성, 성경은 흠이 없다고 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성경을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보는 것은 오히려 하나님의 살아 있는 말씀을 죽은 말씀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순간적으로 된다(becomes)’고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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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심하게 말하면 바르트는 성경을 제 멋대로 해석할 수 있는 길을 터 버렸습니다. 성경의 무오성을 인정하지 않고요. 오류(誤謬) 없는 성경을 해석하는 오류투성이 인간의 이성(理性)에 엄청난 의미를 부여하는 인본주의적 한계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래서 바르트 신학을 계시의 신학, 말씀의 신학이라고도 하는데요.


실은 신사도 계열이나 하나님의 계시임을 강조하며 단편적 성경을 인용해 황당한 종말론을 펴는 것이 실은 신정통주의와 유사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어쨌건 자유주의건, 신정통주의건 성경의 무오성·무흠성을 의심하는 세상의 초등학문과 철학들인데요. 이 흐름이 신학교를 잠식하기 시작하고 급기야 미국 교회 주류인 장로교의 ‘1967년 신앙고백서’를 만들어 기존의 성경무오성을 삭제합니다.


실제로 이 새 신앙고백서를 보면요. 말을 워낙 그럴싸하게 해 놔서 일반인 입장에서 잘 분별이 안 될 수밖에 없는데요. 성경 무오성의 삭제 외에도 성경은 사람들의 말이며 그 기록되던 시대와 장소와 환경에 유행하던 언어와 사상과 문체의 제약을 받았기 때문이라며 절대성을 가지지 못하고 상대적 가치를 가질 뿐이라고 폄하합니다.


이 부분은 좀 설명이 필요한데요. 성경의 인간 저자들이 단지 하나님이 구술하신 것을 그대로 기록한 이른바 ‘기계적 영감설’ 또는 ‘받아쓰기 이론’이 옳다고 볼 수 없습니다. 통상 루터·칼빈 같은 개혁주의 신학자들의 솔라 스크립투라는 ‘축자영감설’이라고 합니다. 즉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된 성경은 한 글자도 한 문장도 틀림이 없고 오류가 없다는 것이죠.


축자영감설의 오류가 없다는 것은 수 없이 필사되고 번역되는 과정에서 오류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원본(原本)성경’에 어떠한 오류도 없다고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 속에서 약간의 불일치는 조화를 이루도록 설명하려 하고, 만약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설명할 수 없는 어떤 다른 이유가 있을 뿐이라고 간주해야 합니다.


그러나 유명한 개혁주의 신학자 루이스 벌코프의 비판처럼 축자 영감을 거부하는 사람들은 그와 같은 것들은, 대부분 성경 기자의 오류라고 쉽게 간주해 버리죠. 실제 마태복음 22장32절에 나오듯 신약의 저자들이 모든 단어와 음절 그리고 구두점까지도 중요하게 여겼던 사실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마 22:32).


요컨대 성경은 오류가 없다고 봐야 합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은 매우 정확한 것이요. 주님은 성경의 저자가 가지고 있는 어휘들 중 주님이 전달하려는 생각을 가장 적절히 전달해 줄 하나의 단어가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겪는 성경 본문 설명의 어려움을 단순히 오류의 증거로 판단해선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근대 이후 타락한 이성과 부패한 지성은 별의 별 이론을 끌어다 현대신학의 아성을 만들고 신학교를 점령해버렸습니다. 결론은 성경의 무오성, 절대성에 대한 부정입니다. 이 치명적 실수는 이후 동성애·낙태와 유물론 사회주의 등 온갖 반성경적 논리가 교회에 침범할 수 있는 길을 열고 말았습니다. 신학이 신앙을 죽이는 도구가 돼버린 것입니다.


어둠과 흑암의 창궐은 실은 교회의 타락이요 이것은 성경에 대한 의심에서 시작합니다. 마지막 때 주님의 거룩한 사명을 감당키 위해선, 인본주의 철학의 공격 앞에 우선 성경으로 돌아가야 할 것입니다. 믿어지지 않는다고요? 천지창조, 홍해의 기적, 엘리야의 기적, 의인의 승리, 북한구원과 복음통일 믿어지지 않는다고요?


그렇다면 또 그렇기에 우리는 끝임 없이 하나님 자체인 말씀을 읊조립니다. “주의 입의 모든 규례를 나의 입술로 선포(시편 119:13)”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또 다시 의심이 들어 물속에 빠지기 때문입니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면 기도도 잘 안 됩니다. 헌데 기도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믿는 것, 성경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헌데 사탄의 공격이 너무 거세지면 하나님이, 말씀들이 잘 안 믿어집니다. 걱정, 근심, 염려, 두려움 때문입니다. 그것이 타락하고 부패한 인간의 민낯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말씀을 하루 종일 하가(중얼중얼거림)합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오고 가장 강력한 들음은 우리의 입술로 말씀을 읊조릴 때이기 때문입니다.


짜증나도 말씀을 중얼거리고, 화나도 말씀을 중얼거리고, 두려워도 말씀을 중얼거리고, 겁이 나도 말씀을 중얼거리고, 억울해도 말씀을 중얼거리고, 기뻐도 말씀을 중얼거리고, 즐거워도 말씀을 중얼거립니다. 그렇게 살았던 사람이 다윗입니다. 그래서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않습니다.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합니다.


그러다보면 어느 순간 성경 66권 말씀들이 믿어집니다. 기도할 때도 여호와가 나의 산성이시라는 믿음이 쾅하고 들어옵니다. 그때 봄 눈 녹듯 어둠의 공격은 기적처럼 사라집니다.


하나님. 여호와는 나의 산성이시요 나의 하나님은 나의 피할 반석이심을 믿습니다. 의인을 핍박하는 악인들의 죄악을 그들에게 돌리시며 그들의 악으로 인하여 그들을 끊으실 것을 믿습니다. 하나님. 목적이 있는 시험 앞에 하나님을 믿음으로 승리하는 믿음의 세대가 일어나게 하옵소서. 저희로 그렇게 승리하게 하옵소서.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룰 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마가 11:23).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했습니다. 아멘.

  
김성욱의 전체기사  
2021년 07월20일 10시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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