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버티헤럴드 -libertyherald.co.kr-
   issue 예수께서 이 나라를 살리실 것이다. Up 최종편집: 11월22일(월) 10:53    

리버티헤럴드 > > 정치·사회
 한글파일로 저장  메모장으로 저장  워드패드로 저장   프린트 하기
성경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에서 성취되는 하나님의 놀라운 예언들 그리고 다가올 전쟁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가 유혈분쟁을 일단락 짓기로 합의했습니다. 20일(이하 현지시간) 이스라엘 정부는 성명을 통해 “휴전은 상호 간 조건 없이 진행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지난 10일 하마스의 선제공격에 폭격으로 응수한 지 꼭 열흘만입니다. 예루살렘에 다시 평화가 회복된 것은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중동의 평화는 문제는 모든 인류의 바람이고 세계 평화의 핵심적 이슈이지만요. 이번 사건이 봉합된다고 해도 이스라엘의 평화는 그리 녹녹한 문제가 아닙니다. 이는 수천 년 쌓인 유대인과 아랍인의 증오심 때문이기도 하지만요. 한 마디로 말해 성경적인 관점에서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들은 평화적으로 공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해외 언론은 물론 한국 언론도 중동 평화 문제의 초점을 이스라엘 탓으로 돌리곤 합니다. 이번에도 최초 로켓포 공격을 한 하마스에 대한 비판 대신 이스라엘이 과잉대응 나아가 양민학살을 한다는 식으로 보도를 하더군요.


그러나 본질적 문제는요. 아랍 국가들이 바라는 것은 이스라엘과의 평화가 아니라 이스라엘의 멸망(滅亡)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대한민국과 소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간의 평화적 공존이 어려운 것과 비슷합니다. 북한체제가 대한민국이 사라지는 적화통일을 위해 77년 간 초지일관 도발하고 공작해 온 것처럼, 이스라엘을 결코 인정할 수 없다는 아랍 국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랍 국가 지도자들은 공공연히 이스라엘을 지도상에서 없애버리겠다고 공언을 합니다. ‘이스라엘의 산들 누구의 땅인가’라는 책을 보니, 시리아·이집트·요르단 등 아랍 국가에선 아이들 교과서에서부터 “이스라엘은 사라져야 한다.”고 기술돼 있다고 합니다. 이스라엘 입장에서는요.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나라들의 테러에 평화적 대응을 한다는 것은 곧 국가적 자살을 뜻하는 것입니다.


헌데요. 놀라운 것은 이 모든 갈등과 분쟁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큰 전쟁까지 성경에 기록돼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 중동의 평화 문제도 성경적 예언이 성취되는 과정에서 이해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선 아랍 국가들의 이스라엘에 대한 증오심은 성경 여러 곳에 표현돼 있습니다. 


가령 에스겔 35장5절 말씀을 보면 “네가 옛날부터 한을 품고 이스라엘 족속의 환난 때 곧 죄악의 마지막 때에 칼의 위력에 그들을 넘겼도다(겔 35:5)”고 나옵니다. 이 말씀은 현재의 요르단 땅인 에돔을 향한 예언인데요. 이스라엘 족속에 대한 증오심으로 이스라엘을 없애려고 칼의 위력, 즉 강대국과 힘을 합치는 등 무력으로 무너뜨리려 한다는 것입니다.


시편 83편은 훨씬 구체적입니다. 3절을 보면 “그들이 주의 백성을 치려하여 간계를 꾀하며 주께서 숨기신 자를 치려고 서로 의논하여. 말하기를 가서 그들을 멸하여 다시 나라가 되지 못하게 하여 이스라엘의 이름으로 다시는 기억되지 못하게 하자 하나이다(시 83:3-4)


그들이 한마음으로 의논하고 주를 대적하여 서로 동맹하니. 곧 에돔의 장막과 이스마엘인과 모압과 하갈인이며. 그발과 암몬과 아말렉이며 블레셋과 두로 사람이요. 앗수르도 그들과 연합하여 롯 자손의 도움이 되었나이다(시 83:5-8)”고 나옵니다. 아랍 족속이 연합하여 이스라엘이라는 나라 자체를 없애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그렇죠? 이스라엘은 1948년 건국 이후 주변 아랍 국가들과 싸우며 나라를 세우고 지켜온 국가입니다.


물론 이런 반문이 있을 수 있습니다. 중동의 분쟁지대는 원래 아랍인의 땅이고, 1948년 이스라엘이 건국돼 이 땅을 빼앗지 않았다면, 싸울 일도 없었을 거라고요. 제1차에서 4차에 이르는 중동전쟁, 제1차에서 4차에 이르는 가자전쟁, 1·2차 이스라엘-레바논 분쟁, 1·2차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도 없었을 거라고 말입니다.


기독교인 중에도 좀 지적인 분들은 이렇게 생각하는 분들이 정말 많은데요. 그러나 이런 접근은 성경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스라엘 건국과 그 이후 영토 확장은 모두 성경에 기록된 약속의 성취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이스라엘을 비난해 온 아랍 국가는 물론 전 세계 주류 언론은 실은 이 성경적 예언을 부인하려는 것입니다.


많은 성도들도 성경 중 믿고 싶은 것만 믿으려 하지만, 말씀의 기록은 분명하고 단호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과의 숱한 언약을 통해 예루살렘은 물론 1967년 3차 중동전쟁을 통해 이스라엘이 점령한 골란고원, 웨스트뱅크와 가자지구 등을 기업으로 약속하셨습니다.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두루 다녀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창 13:17)”


“그 날에 여호와께서 아브람과 더불어 언약을 세워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애굽 강에서부터 그 큰 강 유브라데까지 네 자손에게 주노니(창 15:18)”


“여호와께서 그것들을 위하여 제비를 뽑으시며 그의 손으로 줄을 띠어 그 땅을 그것들에게 나누어 주셨으니 그들이 영원히 차지하며 대대로 거기에 살리라(사 34:17)”


“너는 또 말하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너희를 만민 가운데에서 모으며 너희를 흩은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모아 내고 이스라엘 땅을 너희에게 주리라 하셨다 하라(겔 11:17)”


“인자야 너는 이스라엘 산들에게 예언하여 이르기를 이스라엘 산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겔 36:1)”


아브라함에게 이스라엘 땅을 주신 하나님은 죄로 인해 추방당한 유대백성들을 모으시고 이스라엘 땅, 이스라엘 산을 다시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땅과 그 산의 현재 명칭은 예루살렘과 분쟁지대인 웨스트뱅크와 가자지구를 포함하는 곳입니다.


유대인들은 어린 시절부터 토라를 배우며 당연히 이곳이 자신들이 하나님께 받은 땅과 산임을 확신하며 자랍니다. 그리고 그 말씀은 1948년 건국과 1967년 3차 중동전쟁을 통해 현실로 이루어집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이스라엘에서 벌어지는 역사들은 모두 하나님의 약속들이 이뤄지는 과정입니다. 몇 가지 예를 더 들어보겠습니다. 에스겔 38장28절로 “전에는 내가 그들이 사로잡혀 여러 나라에 이르게 하였거니와. 후에는 내가 그들을 모아 고국 땅으로 돌아오게 하고 그 한 사람도 이방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그들이 내가 여호와 자기들의 하나님인 줄을 알리라(에스겔 39:28)”


주님은 성경에서 무려 700여 개 구절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토로 돌아오는 이른바 알리야를 말씀하고 계십니다. 실제로 건국 당시, 이스라엘에 살고 있던 유대인들은 약 70만 명이었지만 현재는 알리야를 통해 약 700만 명으로 10배나 가까이 되는 인구로 증가했습니다.


이 뿐 아니죠. 


“내게 구하는 백성들 곧 내가 흩은 자의 딸이 구스 하수 건너편에서부터 예물을 가지고 와서 내게 드릴찌라(스바냐 3:10)” 


“내가 북쪽에게 이르기를 내놓으라 남쪽에게 이르기를 가두어 두지 말라 내 아들들을 먼 곳에서 이끌며 내 딸들을 땅 끝에서 오게 하며(이사야 23:6-7)”


 하나님은 또한 구스 하수 건너편, 즉 현재 에티오피아의 흩은 자의 딸들이 땅 끝에서 오게 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실제로 이스라엘은 1984년 ‘모세 작전’을 통해 에티오피아에 거주하는 8,000명의 유대인들을 이스라엘로 데리고 옵니다. 91년에는 ‘솔로몬 작전’을 통해 34대의 이스라엘 공군 수송기들이 14,000여 명의 에티오피아 유대인들을 비행기로 데려왔죠. 지금도 에티오피아에서 기독교인과 유대인에 대한 박해와 공격이 심해지면서 이스라엘 이주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에 가 보시면 아시겠지만. 광야와 메마른 땅은 어떻습니까? “광야와 메마른 땅이 기뻐하며 사막이 백합화 같이 피어 즐거워하며(사 35:1) 그 때에 저는 자는 사슴 같이 뛸 것이며 말 못하는 자의 혀는 노래하리니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사 35:6-7)는 말씀처럼 이스라엘 광야에는 물길이 놓이고 엄청난 양의 나무가 심겨지고 숲이 조성되고 있습니다. 말씀 그대로 말이죠.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요? 이스라엘을 향한 주님의 말씀이 지금까지 성취된 것처럼, 앞으로도 성취될 것입니다. 인간적으로는 무시무시하지만, 남아 있는 예언은 에스겔 38-39장의 곡과 마곡의 전쟁, 즉 통상의 해석에 따르면 이스라엘을 없애려고 발악하는 아랍 국가들이 현재의 러시아, 터키 등과 연합하여 이스라엘을 치는 큰 전쟁입니다. 그리고 성경에 따르면, 이스라엘은 이 전쟁에서 승리하고, 중동에는 평화조약이 맺어질 것이라고 나옵니다.


여기서부터 참 헷갈리는데요. 곡과 마곡의 전쟁은 요한계시록에도 등장하고 아마겟돈 전쟁과도 혼돈돼서, 많은 분들이 그냥 마지막 때 큰 전쟁이 있을 것이다 정도로만 이해합니다. 해석이 워낙 갈리긴 하지만, 시대를 분별키 위해서 정리해 보자면 이렇습니다. 마지막 때 큰 전쟁은 에스겔 38-39장의 곡과 마곡의 전쟁, 요한계시록 16장16절의 아마겟돈 전쟁 그리고 요한계시록 20장의 또 다른 곡과 마곡의 전쟁이 나옵니다.


우선 대체신학 혹은 교체신학 해석에 따르면,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교회가 이스라엘을 대체했다고 말합니다. 같은 맥락에서 마지막 때 큰 전쟁은 실제의 전쟁이 아니라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세상 간의 영적 전쟁이라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헌데 이스라엘이 실제로 건국되고 회복되고 귀환하고 또 아랍국과 다툼이 날로 커지자, 마지막 때 실제의 큰 전쟁에 대한 해석이 힘을 받고 있습니다. 또 영적 전쟁과 실제 전쟁이 함께 일어나는 것이라는 해석도 많고요.


결론적으로 다양한 주해서들을 참고해보면요. 요한계시록 20장에 나오는 곡과 마곡의 전쟁은 천년왕국이 끝나고 일어나는 전쟁으로, 시기나 성격에 있어서 앞의 두 전쟁, 즉 에스겔 38-39장의 곡과 마곡의 전쟁, 요한계시록 16장16절의 아마겟돈 전쟁과 시기와 성격이 다릅니다. 전쟁을 시작도하기 전에 하늘에서 내린 불로 평정됩니다.


에스겔 38장의 곡과 마곡의 전쟁과 아마겟돈 전쟁은 예수님 재림 이전 말세지말(末世之末)의 전쟁이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전자는 휴거 직전에 일어날 전쟁이고 후자, 즉 아마겟돈 전쟁은 휴거 이후 전쟁으로 해석됩니다. 전자는 일종의 국지전쟁, 뒤는 일종의 세계대전으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이런 부분을 신학교에서 자세하게 가르치는 것도 아니고 또 말하는 사람마다 해석이 갈려서 온갖 이단·사이비가 출현하는 근거가 되기도 하는데요. 적어도 성경에 나온 그대로 시간 순 배열을 하자면, 첫째가 에스겔 38-39장의 곡과 마곡의 전쟁, 둘째가 아마겟돈 전쟁, 그리고 천년왕국이 끝나고 마지막 심판 전에 일어날 계시록 20장의 곡과 마곡의 전쟁이 벌어진다고 볼 수 있죠.


자세히 살펴보지 않으면 에스겔의 곡과 마곡, 아마겟돈, 계시록의 곡과 마곡의 세 전쟁이 뒤엉켜 마치 하나의 종말적 사건으로 이해하기 쉽지만 셋은 모두 구별된 독립된 사건으로서 시간적 차이를 두고 일어날 사건이라고 보는 것이 맞다고 해석됩니다.


어쨌건 성경에 따르면, 에스겔 38장의 곡과 마곡의 전쟁이 터지고 마무리 되면서 평화의 조약이 맺어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자! 그 다음은요? 적그리스도가 모습을 드러내면서 휴거와 함께 7년의 대(大)환란이 시작되고 후 3.5년이 시작될 때 적그리스도가 평화의 조약을 깨면서 이스라엘을 공격한다고 나옵니다.


자 그리고는요?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다시 오십니다!


자 제가 아주 길게 말씀드렸습니다만, 포인트는 이것입니다. 이스라엘의 건국과 아랍 국가들과의 숱한 전쟁, 알리야, 또 지금 벌어지는 아랍 국가들과 터키, 러시아, 심지어 중국과의 연대 같은 조짐들은 성경에 기록된 곡과 마곡의 전쟁의 조짐일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중동의 평화를 바라는 인간적 바램과 달리 오히려 더 큰 전쟁이 터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휴거와 함께 주님이 다시 오실 날이 멀지 않았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그 날과 그 때를 모릅니다. 이것은 수년 뒤 또는 수십 년 뒤 또는 그보다 더 먼 미래에 벌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기에 이 난리와 난리의 소문들 앞에서 더 깨어 주님께 기도합니다.


하나님. 주님 지금까지 성경의 모든 예언이 이뤄진 것처럼, 남은 예언 또한 반드시 이뤄질 것을 저희가 알고 믿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날과 그 때를 알 수 없으나, 무화과나무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알라고 하신 것처럼, 세상의 어수선한 사건·사고들 속에서 주님 오실 날이 멀지 않았음을 느끼고 있습니다. 우리로 잠들지 않게 하시고 더 깨어 사명의 완성을 위해 더 기도하고 더 회개하고 맡기신 사명 감당할 수 있도록 더 부르짖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마 24:32-33)

  
김성욱의 전체기사  
2021년 05월28일 01시41분  


 
Search

나라 걱정, 너무 많이 하지 마세요
드 메스트르가 이재명에게
세계경제위기와 종말의 징후들
평양의 저 놀라운 병원
윤석열 우세와 한국 교회 미혹
오징어게임을 보는 평양의 시민들
백신 접종 기준 삼아 예배 참가 제한한..
김정은을 노리는 30그램 자폭 드론





단체소개개인정보취급방침 ㅣ 개인정보관리책임자: 김성욱 ㅣ 이메일 무단수집 거부

Copyright ⓒ Libertyherald.co.kr  All rights reserved    koreainjesus@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