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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실의 비밀
GDP10% 노예무역을 포기한 대영제국


얼마 전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 남편인 필립공(에든버러 공작)이 99세 나이로 사망했습니다. 영국 매체를 보면, 사후에 그의 신앙에 대한 일화가 종종 보도되는데요. 프리미어 기독교뉴스라는 영국 매체에 따르면, 그가 아내였던 여왕에게 기독교 신앙에 대해 더 많은 공개적 발언을 하라고 조언했다거나, 그의 돈독한 신앙에 대한 성공회 주교의 발언 등이 실려 있습니다.


가령 ‘하나님, 여왕을 지켜주소서’라는 제목의 책의 저자이자, 필립공과 여왕을 방문 설교했던 이안 브래들리 목사는 필립공의 신학적 지식에 대해 놀란 적이 있다고 말합니다. 또 2000년 여왕의 방송 출연 당시 필립공이 그녀의 기독교 신앙에 대한 간증을 하라고 권했던 일화 등도 말합니다. 또 프리미어 기독교 뉴스는 필립공과 여왕이 모두 기도하는 사람이었다고 보도하고 있습니다.


실제 2016년 여왕은 90세 생일을 앞두고 ‘종 된 여왕 그리고 섬기는 왕’(The Servant Queen and the King She Serves)’라는 책을 내는데요. 여기서 여왕은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의 인생에서 중심적 역할을 했다며 기독교 신앙에 대해 분명하게 고백합니다. 또 “하나님의 신실하신 사랑에 감사하고, 여러분의 기도에 감사하다. 난 참으로 그분의 신실하심을 보았다”고 말했습니다.


물론 영국 왕실이 성공회 계열이고, 음모론적 시각에선 여왕은 프리메이슨 상층부라 하고, 또 영국 인구 13% 가량이 무슬림 등 해외 유입 인구라 영국 내 무슬림 비율도 2016년 6.3%에 달한다 합니다. 그러나 필립공과 여왕의 신앙 고백은 영국의 기독교적 전통을 보여주고 있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그런 면에서 선교하는 통일한국의 비전을 위해선 영국의 기독교적 전통을 들여다 볼 필요가 있습니다.


가령 영국이 가장 강했던 시절인 18~19세기, 역시 기독교도 강했습니다. 현실정치에서 보면, 기독교 가치에 입각한 도덕적 위신(威信)은 다른 정치적 목적을 정당화하는 수단이 됐습니다. 가령 1837년에서 1901년까지 재위했던 빅토리아 여왕(Queen Victoria, 재위 1837~1901)은 18살에 여왕 자리에 오르며 먼저 기도했고 또 성경책을 끼고 살았던 인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분명 150년 전은 서구 열강의 제국주의 시대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노예제 철폐를 말하지 않았고, 다윗 왕을 독재자로 비난할 수 없는 것처럼, 빅토리아 여왕은 그 시대 속에서 주님의 뜻을 구하며 통치했던 것이 맞습니다. 특히 빅토리아 여왕 시절 경건한 성문화, 거룩은 같은 영국 성공회 작가인 C.S.루이스의 《​순전한 기독교》에서도 경건한 성문화의 대표적 사례로 언급이 됩니다.


실제로 빅토리아 여왕 당시, 이른바 ‘빅토리안 벨류(victorian value)’라는 도덕적 가치가 지배했습니다. 그 이전 존 웨슬리(John Wesley, 1703 ~ 1791)의 복음주의(福音主義)는 영적인 옥토를 일궜고요. 공리주의(功利主義)가 돈과 물질만 섬기는 맘모니즘으로 빠지지 않게 했습니다. 국가는 하나님이 주신 강력한 목적이 있다고 믿었고 국민은 이른바 버닝이슈(burning issue), 사명을 위해 앞으로 뻗어갔던 시대입니다.


빅토리아 여왕의 해가 지지 않는 나라가 탄생하기 직전, 웨슬리 같은 이들이 만들어 낸 중요한 부흥의 열매가 있습니다. 바로 노예 해방입니다. 당시 경건한 분위기 속에서 영국인 모두 이런 도덕적 의문에 봉착했습니다. ‘똑같은 인간인 아프리카 흑인을 노예로 파는 것은 마땅한 일’인지 말입니다. 1781년 ‘종(Zong)호 사건’은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사건 개요는 이렇습니다.


당시 리버풀에서 자메이카로 가는 노예무역 선박에서 보급과 위생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선장은 133명의 노예를 바다로 던졌습니다. 헌데 법원은 화물을 버렸을 뿐이란 판결을 내린 것이죠. 구령(救靈)의 열정에 불타기 시작한 영국인 스스로 회의에 빠졌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구원받을 만한가?’라고 말입니다.


7년 뒤인 1789년 드디어 그 유명한 윌버포스(William Wilberforce, 1759 ~ 1833)는 ‘노예무역폐지협회’를 만듭니다. 쉽지 않은 일이었죠. 16세기 이래 영국의 가장 큰 사업 중 하나는 노예무역이었기 때문입니다. 250년 간 300만 명이상의 흑인을 노예로 팔았죠. 신대륙 일대에 커피와 설탕 생산에 필요한 인력을 대줘야 했던 탓입니다. 영국은 18세기 들어 전 세계 거래 노예의 40%를 대줬습니다. 산업혁명 이후 돈을 벌기 위해 뭐든 다 하던 때였죠.


기독교부흥운동사라는 책을 보면요. 어린아이들이 방직공작에서 일을 하고 ‘여섯 집 중 한 곳이 술집이 되었던 런던, 사형이 축제 중 하나’로 여겨질 정도로 음탕하고 살벌한 시대였습니다(윙키 프래트니, ‘기독교부흥운동사’, 74-82). 그러나 영적인 각성은 나라를 바꿔 버렸습니다. 1807년 드디어 노예무역이 폐지됐습니다. 이 당시 조선에선 상놈을 당나귀 가격에 사고팔던 시대죠.


영국은 노예무역 폐지 이후 아예 해군이 나서서 노예무역 단속에 나섭니다. 1807년~1867년 사이 영국 해군이 노예무역 단속을 위해 사용한 비용은 GDP 2%에 달합니다. 군함의 1/6-1/4은 감시활동에 투입됐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1833년, 노예제도 자체가 폐지됐습니다(박지향, 제국의 품격, 163p).


영국은 이후 세계적 자유의 투사(freedom fighters)로 나서게 됩니다. 1850년 브라질에서 노예무역을 중단시켰습니다. 1863년에는 신대륙 미국에서도 링컨 대통령에 의해 노예제도가 폐지됐습니다. 6년 뒤 영국 해군의 노예무역 단속함대는 ‘대서양 노예무역 종식’을 선언한 뒤 공식 해산합니다. 자유무역과 세계평화를 수호할 미션을 갖춘 진정한 십자군 역할을 수행한 셈입니다.


일부 사회주의자들은 영국의 도덕적 결단이 위선(僞善)일 뿐이란 비판을 가합니다. 장사가 안 되는 노예무역을 그럴싸하게 중단한 것이란 요지죠. 그러나 영국은 18세기 프랑스와 대결에서 승리하여 전 세계 노예무역의 1/2이상을 독점한 상태였습니다. 당시 통계에 따르면, 노예무역을 통한 이익도 GDP 10%를 넘었습니다.


노예가 생산한 설탕과 커피에 대한 수요도 여전히 높았습니다. 세이무어 드레셔(Seymour Drescher) 같은 학자는 이를 일종의 스스로 가해진 경제적 학살(self-inflicted econocide)이라 부릅니다(Seymour Drescher, ‘Econocide: British Slavery in the Era of Abolition’. foreword).


당장의 국가적 손실을 각오한 배경엔 복음(福音)이 있었습니다. 이 세대를 본받지 않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고 기쁘고 온전한 뜻을 쫓아가는 선한 마음이 있었습니다(롬 12:2). 실제로 1807년 맨체스더 거주 남성 2/3가 노예무역 종결 청원서에 서명했고 1814년에는 영국인 75만 명이 노예제 폐지에 서명했습니다.


영국의 황금기 빅토리안 밸류(victorian value)는 나의 유익이 아닌 남의 유익을 구하며 선한 일을 하는 성경적 비전이 이뤄낸 국가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당시 세계적인 제국주의 광풍 속에서도, 영국 제국주의는 선교사들의 복음전파를 불러옵니다. 제국주의는 잘못된 것이지만, 그 시대에 허락된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영국의 과거는 한국의 미래에 도덕적 영감을 줍니다. 워크 프리(Walk Free) 재단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북한은 이른바 노예 지수 1위인 체제입니다. 전체 주민 10분의 1인 265만 명이 노예로 분류된 곳, 전 세계 노예 4,030만 명 중 6.5%의 노예가 살고 있는 곳이 북한입니다. 21세기. 동족 절반의 참상을 저대로 두고도, 한국이 무언가 성취할 수 있다는 것은 착각입니다.


2,500만 동족을 노예 상태로 버려둔 이기적 집단이, 700만 민족을 학살한 김일성 일가를 높이는 음란한 백성이 무슨 선하고 의로운 일, 하늘의 축복을 논할 수 있겠습니까? 기독교인에게 이것은 구원과 관련된 절박한 일입니다. 주님 이르듯,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갈 것(마 7:21)”이기 때문입니다.


북한 구원은 곧 남한 생존의 길인 것입니다. 복음주의(evangelism)가 빚어낸 노예해방이 맘몬이 지배한 섬을 사회주의(socialism)에서 구출한 것처럼, 북한해방은 한국을 친북·친중 좌익적 쓰나미에서 구출할 것입니다. 19세기 영국이 제국주의라는 한계 속에 복음을 전했다면, 21세기 통일한국은 폭력과 완력이 아닌 복음의 제사장 나라가 돼 열방을 살리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 주의 권능의 날입니다. 우리의 다음세대 가운데 이 음란한 세대를 본받지 않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고 기쁘고 온전하신 뜻을 감당하는 새벽이슬 같은 청년들이 일어나게 하옵소서. 저희로 먼저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했습니다. 아멘. 

  
김성욱의 전체기사  
2021년 04월18일 13시4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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