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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안에 파고든 영혼의 좀벌레
교회 안에 너무 많이 번진 뉴에이지


기독교인이라면, 적어도 몇 년이라도 교회를 열심히 다녔던 분이라면 이른바 ‘뉴에이지’가 나쁘다는 것쯤은 잘 알고 있습니다. 또 ‘기독교 세계관’을 다루는 학자들도 이 뉴에이지 운동을 반(反)기독교 흐름으로 중요하게 다루곤 합니다. 그러나 뉴에이지라는 것이 워낙 다양한 분파가 있고 또 항상 그 모양과 꼴을 바꾸기 때문에, 기독교 안에 슬금슬금 들어온 뉴에이지를 분별키 어려울 때도 많습니다.


이러다보니 뉴에이지를 비판하는 기독교인조차 실은 뉴에이지 적(的) 요소를 띠는 경우가 있습니다. 유튜브만 봐도요. 뉴에이지를 비판하면서도 실은 뉴에이지 흐름을 따르는 그런 목사, 선교사, 강연자 등등을 볼 수 있습니다. 해외에는 더 많고요. 이런 이슈를 학문적으로 접근하면 한도 끝도 없지만, 분별하는 차원에서 간단히 정리하고 기도하려고 합니다.


우선 뉴에이지의 정의인데요. 통상 신을 인정하긴 하지만, 범신론(汎神論)적이고 다원적(多元的) 특징을 띱니다. 또 점성술에 근거해서 인류가 ‘뉴에이지’, 새로운 시대로 진입한다고 보죠. 헌데 이런 정의는 뭔가 뜬 구름 잡는 것 같고요. 간단히 말하면 하나님을 인정하긴 인정하는 것 같은데 예수 그리스도가 없거나 희미하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즉 하나님을 성경에 기록된 것처럼 살아서 역사하시는 존재로 보는 게 아니고요. 우주의 초월적 신성으로 여깁니다. 인간은 이 초월적 신성과 하나가 돼야 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의 깨달음의 의식, consciousness로 보죠. 그래서 역사적 예수 뿐 아니라 붓다, 무함마드, 성자가 된 청소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람이 이 예수 그리스도의 의식에 도달해 신과 하나가 됐다고 봅니다.


결국 예수 외에 수많은 길을 통해 구원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죠. 얼핏 보면, 기독교의 영지주의나 신플라톤주의, 불교와 힌두교, 점성술과 마술 등을 합성한 밀교 성격도 띱니다. 가이아 이론 같은 생태학이나 극단적 환경주의와도 맥이 닿습니다. 헌데 이 뉴에이지 운동의 가장 큰 특징은 상대주의라는 것입니다.


성경에 대한 절대적 믿음이 없으니, 선과 악, 옳고 그름의 기준이 상대화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도 하나님께 갈 수 있지만, 벨리알을 통해서도 하나님께 갈 수 있다는 것이죠. 결국 뉴에이지에서는 빛도 없고 어둠도 없으며 빛도 어둠이 되고 어둠도 빛이 됩니다. 마치 동양의 태극처럼 말입니다.


헌데 이런 뉴에이지가 기독교 안에 뿌리를 뻗치는 이유는 이것이 체험, 특히 신(神)적 체험을 중시하는 탓입니다. 이른바 ‘초월적 체험(transcendent experience)’이죠. 요가, 명상 또는 이른바 다양한 명칭의 기도로 창조주와 하나가 되는 것이죠.


헌데요. 기독교 안 에서도요. 말씀의 기반이 빈약한 그리고 주님의 임재만 강조한 기독교 은사주의 일부가, 이 체험을 고리로 가톨릭 신비주의와 결합하고 또 여타 종교와도 결합하는 현상들이 나오곤 합니다. 이런 기독교를 뉴에이지라고 부르긴 어려운 면이 있지만, 뉴에이지적(的)이고 그래서 좋지 않은 열매들이 맺어지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물론 기독교 역시 체험의 종교입니다. 방언과 통역은 물론 환상, 계시, 예언 등 다양한 신비 체험이 성경에도 강조돼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체험은 말씀을 기초로 하는 것입니다. 헌데 기독교 안의 뉴에이지 흐름은 말씀에 대한 절대적 믿음은 없고 체험만이 강조됩니다.


놀라운 주님의 임재 체험을 통해서 정신과 육체의 치유, 치병 그리고 나아가 축복을 구하곤 합니다. 그리고 가톨릭과 연합 집회를 벌이며 나아가 ‘평화’를 매개로 수많은 종교와 공존을 넘어서 연합해 갑니다. 지난 십여 년 간 이런 흐름은 해외의 이른바 기독교 영성운동가 사이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특징입니다.


당연히 영성은 기독교의 본질적 모습입니다만, 여기서는 영성(spirituality)만을 강조하죠. 그들은 분명 하나님을 사랑하고 환상, 계시, 예언 등 은사도 많은데, 신앙은 병고치고 축복받는 차원에서 한 걸음도 자라지 않습니다. 나라와 민족과 열방을 향한 기도로도 가려 하질 않습니다. 간다 해도 악세사리 같은 수준입니다. 자신의 의식에서 벗어나 하나님과 하나 되는 입신(入神)의 체험만을 갈망하고 실제 황홀경을 체험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공통적으로 말씀에 대한 기반이 약하고 당연히 성경 66권 전체를 믿지 않습니다. 말씀이신 하나님이 성경 속에 부어주신 놀라운 약속과 언약을 믿지 않습니다. 그러니 자신에게 해당되는 요절 몇 말씀만 붙잡고 치병, 치유, 축복을 구하는 수준에 머물죠. 그리곤 중세 때부터 신비 체험의 본산이었던 가톨릭과 연합하고 나아가 WCC의 우산 아래 모여듭니다.


저는 30대 때 은사집회라면 동서남북 가리지 않고 찾아다녔던 사람입니다. 개인적으로 많은 체험을 하기도 했었고 또 신통, 방통, 영통한 분들도 많이 봤습니다. 헌데 실제 그 은사자들을 보면서 실망하곤 했습니다. 예수님의 사랑, 용서, 용납 그 놀라운 긍휼의 마음, 십자가 대신 영적 교만과 물욕, 명예욕 정말 심각한 분들이 많았죠.


헌데 그런 놀라운 은사를 가진 분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말씀에 대한 기반이 약하고 당연히 성경 66권 전체를 믿지 않았습니다. 필요한 요절만 믿습니다. 그러다가, 말씀 없는 영적 체험의 노즐을 따라 어느 순간 누룩들이 들어옵니다. 나라와 민족과 열방을 위한 기도를 하던 이들도 결정적 순간에 기도의 방향이 세상과 타협해 버리곤 합니다.


이런 흐름은 해외 사역자 가운데 특히 많습니다. 젊을 때 틈만 나면, 이름난 이들의 기름 부음 집회에 가곤 했습니다. 분명 열광적 찬송과 격렬한 기도의 흐름은 영적으로 죽어버린 현대교회에 생동감을 불어넣는 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말씀의 길을 쫓지 않는 강렬한 체험은 지나고 나면 허망해지곤 했습니다. 치유, 치병, 축복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틀린 것이 확인되는 예언들. 그리고 최근에는 이해할 수 없는 종교 간 화해를 가장한 연합 같은 열매들이 열립니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말씀에 대한 기반이 약하고 당연히 성경 66권 전체를 믿지 않으니, 분별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니 뉴에이지 요소들, 실은 현대판 영지주의가 가톨릭을 통해 기독교에 가스처럼 들어오는 데도 막아내질 못하는 것이죠. 그러니 진정한 회개와 변화와 부흥 대신 격렬한 비트의 부흥 집회 그리고 병든 교회만 남습니다.


뉴에이지 적(的) 요소들은 이런 일부 기독교 영성운동에만 흘러가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 없는 평화를 쫓는 이들’ 역시 그렇습니다. 신앙은 예수를 그리스도, 즉 우리의 유일한 구원자, 구세주로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 인본주의 성향 기독교인들은 영생에는 무관심해 보입니다. 인권, 평등, 평화, 사회개혁, 공해추방 등을 복음으로 착각합니다.


한국 교회 안에도 정말 많죠. 거명하지 않아도 정말 많은 선교단체가 그런 것 같습니다. 교회는 개혁의 주체가 아닌 개혁의 대상일 뿐이고, 한국은 ‘해외 선교’를 할 때가 아니라 ‘사회선교’를 해야 한다고 하면서, 청년들을 해외선교사가 아닌 사회선교사로 양육합니다. 그리곤 온갖 시위 현장에서 목숨 걸고 투쟁하며 그것을 하나님 뜻으로 여기죠.


물론 인권, 평등, 평화 모두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이지만, 예수가 빠진, 구원이 빠진, 영생이 빠진 인권, 평등, 평화는 모두 가짜가 되고 맙니다. 헌데 당혹스러운 것은요. 이런 단체에 있는 이들도 나름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 어마어마한 영적 체험을 자랑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저도 이런 곳과 연결된 모임에 강연을 한 적이 많은데요.


가령 원수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김정은의 악에 대해 방조하고 동족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대북지원을 지속합니다. 또 박근혜 탄핵 때는 촛불시위를 예배라며 광장으로 모여들죠. 무엇보다 이런 치우친 이념적 행보를 하나님의 감동, 음성, 명령으로 정당화합니다. 역시 환상, 계시, 예언 정말 많은 체험을 이야기 합니다. 그러나 역시 말씀에 대한 기반이 약하고 당연히 성경 66권 전체를 믿지 않습니다. 그저 영적 체험만 말하고 머릿 속엔 세상 이데올로기가 가득 차 있습니다.


뉴에이지 또는 뉴에이지적 흐름은 앞으로도 더욱 흥왕하며 여러 종교를 신비 체험의 우산 아래 하나로 묶어갈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령님을 말하지만, 말씀에서 빗겨나 버리면 정말 위험해집니다. 체험이라는 우산 아래 어느 순간 가톨릭 신비주의와 연합하고 나아가 타 종교와 연합해서 하나님의 선하고 기쁘고 온전하신 뜻에서 빗겨나 버립니다.


이것을 막는 길은 다시 성경으로 돌아가는 것뿐입니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낮이건 밤이건 성경을 소리 내어 읽는 훈련이 시작입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우리의 입술로 완전하신 성경을 읽고 들을 때 성장합니다.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시킵니다.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합니다.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합니다.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합니다. 말씀이신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법도 진실하여 다 의롭습니다. 금 곧 많은 순금보다 더 사모할 것, 꿀과 송이 꿀보다 더 달콤한 주님의 말씀을 사랑하는 자들은 자기의 허물을 능히 깨달아 숨은 허물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저희로 하루 종일 틈날 때마마 완전하신 주님의 말씀을 읊조리게 하옵소서.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가 되어 주님의 은사와 신비와 체험이 더욱 풍성해져 주님의 선한 일을 감당할 수 있게 하옵소서.


하나님.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 것이라는 말씀처럼, 저희의 호흡이 남아 있는 한 주님의 말씀을 읊조리며 어둡고 캄캄한 시대, 끝까지 견디어 승리하는 자들, 주의 오실 길을 예비하는 자들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했습니다. 아멘.

  
김성욱의 전체기사  
2021년 04월18일 13시3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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