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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망하지 않습니다
망할 것 같은 위기 속에 다시 일어설 것이다. 하나님의 언약과 신이 여전히 이 땅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소망’은 진행 중이다. 구약의 선지자 엘리야는 “큰 비의 소리가 있다”고 선포한 뒤 “갈멜산 꼭대기로 올라가 땅에 꿇어 엎드려 그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기도했고”, 사환을 일곱 번이나 다시 보내 “사람의 손만한 작은 구름”이 일어난 것을 보았고 “조금 후에 구름과 바람이 일어나 하늘이 캄캄하여지며 큰 비가 내렸다(왕상 18:41~45).” 지금도 엘리야 때처럼 큰 비의 소리를 느끼게 할 ‘사람 손만한 작은 구름’은 여기 저기 목도된다. 남은 것은 통일의 영적인 가뭄 속의 엘리야의 기도이다. 주님의 마음에 합하여 외치는 음성이 조금만 더 커지면, 조금 후 구름과 바람이 일어나 휴전선은 무너지고 동족들은 해방될 것이다.
  
  BC 6세기 무너진 성전을 재건키 위해 고향에 돌아온 유대 백성을 향하여 선지자 학게(Haggai)는 이렇게 외쳤다.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내가 너희와 언약(言約)한 말과 나의 신(神)이 오히려 너희 중에 머물러 있나니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지어다.(학2:5)” 좋은 집(paneled house)에 살며 황폐한 성전은 버려둔 백성들(학 1:4), ‘지금은 힘도 없고 능도 없고 적절한 시기도 아니라’며 사명을 피하는 사람들, 상황에 눌리고 환경에 짓눌려 꿈을 버린 자들, 하늘이 주시는 선하고 의롭고 온전한 뜻 대신 조잡한 현실과 천박한 이익에 매여 하루하루 살아가는 이들을 향해 말했다. 주님의 언약과 신이 여전히 머물러 있으니 사명을 향해 나가야 한다고.
  
  주님의 언약과 신은 숱한 순교자의 기도 속에 이 땅에 응했을 것이다. 조선시대 신해박해(1791년)를 필두로 신유(1801)·기해(1839)·병오(1846)·병인(1866) 등 4대 박해에서 순교당한 신도들만 1만 명 이상에 달한다. 그 중 신원이 확인된 256명이 한국의 성인(聖人·124명)·복자(福者·132명)로 로마 캐톨릭에 의해 시복(施福)돼 있다.(* 흔히 순교한 이는 복자로 시복되며 그 이상의 기적이 확인될 때 성인으로 높여진다). 1801년 순교한 유중철은 아내에게 보낸 서한에 “누이여, 천국에서 다시 만납시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고 죽었다. 수천 년간 경천애인(敬天愛人), 하늘을 섬기며 사람을 사랑해 온 이 백성은 하늘에 갈 유일한 길 예수를 만난 뒤 굶주린 자처럼 복음을 취했다. 새로운 민족이 되었다.
  
  <만일 나에게 1,000개의 생명이 있다면>
  
  많은 서양 선교사들의 피도 뿌려졌다. 1866년 평양 제너럴셔먼호 사건 당시 토마스(R. J. Thomas) 선교사는 27세 나이로 죽었다. 1907년 9월 인천 송도에 도착한 루비 켄드릭(Ruby Kendrick) 선교사는 “만일 나에게 1,000개의 생명이 있다면 그 모두를 한국에 바치겠다.”며 26세에 세상을 떠났다. 1902년 군산 앞 바다에서 44세의 나이로 순교한 아펜젤러(H. G. Appenzeller)의 추모비문 내용이다. “우리는 부활절 아침에 이곳에 왔습니다. 그 날 사망의 권세를 이기신 주께서 이 백성을 얽어맨 결박을 끊으시어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자유와 빛을 주옵소서.” 이들은 조선의 견고한 인습과 죄악의 사슬을 끊으려 했었고 실제로 서재필·이승만·이상재·남궁억 등 수많은 예수의 제자를 낳았다.
  
  광혜원(廣惠院)을 비롯해 새문안교회·YMCA·연희전문을 세우는 등 수많은 업적을 남겼던 언더우드(H. G. Underwood) 선교사도 조선 선교 당시 얻은 지병 탓에 1916년 57세에 세상을 떠났다. 그는 “조선에 갈 사람이 없다니 조선은 어떻게 되는가? 너는 왜 못 가는가?”라는 주님의 음성을 들었고 1885년 4월5일 부활주일에 인천에 왔었다. 하늘의 명령에 따랐다. 캐나다 출신의 매킨지(W. J. Mackenzie) 선교사는 한국을 처음 보며 이렇게 일기에 적었다. “나는 이 땅 나라의 대사가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한 대사로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이 땅에 왔다. 새삼 뼈저리게 느낀다.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나니(A Corn of Wheat : or the Life of The Rev. W,J. Mackenzie of Korea)”
  
  일제시대 민족지사 중 많은 이가 기독교의 순교자다. 1911년 105인 사건 당시 기소자 89명, 1919년 3·1운동 민족대표 33인 중 16명이 기독교인이었다. 평화적인 만세운동은 기도운동일 수밖에 없었다. 조선인이 모일 수 있는 유일한 결사체도 교회였다. ‘독립운동사편찬위(委)’가 펴낸 독립운동사 자료집을 보면 3·1운동 당시 고초를 겪었던 한 여성의 기록이 나온다. “그때 나는 기도드렸다. 기도하면서 예수님을 본 것 같았다. 높은 곳으로부터 상당한 위안을 얻었다. 나는 주님이 이때 위안을 주신 것을 감사한다.”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인 남강(南崗) 이승훈 선생은 “2천만이 죽음을 맹세하고 10회, 20회 독립운동을 일으켜서 하나님의 공의에 따르려고 노력한다면 독립은 반드시 이뤄진다”고 말했다. 유관순 열사도 서울 정동교회 예배당 오르간 뒤에서 간절히 기도한 뒤 고향인 천안에 내려가 만세를 불렀다.
  
  3·1운동 당시 ‘독립운동조직위원회’가 발간한 ‘한국인들의 호소와 악한 일본 정부’라는 글은 “지금은 일본 압제자들로부터 손아귀에서 벗어나야 할 시간이자 보편적 인간의 권리를 회복할 때”라며 이렇게 마무리 지었다. “하나님. 우리에게 귀 기울어주시고 우리를 압제들로부터 구원해주소서. 주는 우리의 힘이요 구원이십니다. 우리를 도우시는 하나님 우리는 당신을 믿습니다. 아멘” 1919년 3월 서울 거리에서 학생들이 노래했던 일명 ‘독립가’ 가사는 이랬다. “(1절) 한국민족의 기원을 하나님께 드립니다.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소서. 이 불쌍한 백성들이 죽음의 장소에서 당신의 정의로운 손으로 우리를 구하소서. 기도합니다. (3절) 모든 나라의 구세주 동방국에 축복을 주소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곳을 천국으로 만드소서. 영원에서 영원까지 항상 보호하소서. 기도합니다(출처 : 매티 노블(Mattie Wilcox Noble) ‘조선회상’ 중)”
  
  <“마궁을 멸하고 그리스도의 왕국을 세우자”>
  
  시련의 시기, 조선(朝鮮)은 깎이고 잘리며 예수 안에서 거듭난 민족이 되어 갔다. 모트(J. R. Mott) 선교사는 1905년 “나는 가까운 장래에 한국이 비기독교 국가에서 기독교 국가가 되는 첫 나라가 될 것이라고 깊이 확신한다.”고 적었다. 마가렛 베스트(Margaret Best)는 1907년 “평양은 변하여 점점 더 기독교 도시가 되어가고 있다. 이제 도시를 다닐 때 무당의 북소리는 거의 들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윽고 시작된 일제(日帝)의 흑암 세월, 예수의 세대를 꿈꾸는 자들은 전국을 돌았다. ‘새로운 조선’을 외쳤다. 1920년대 <영계의 용사를 보내며>라는 시에서 익명의 시인은 “마궁(魔宮)을 멸하고 화세(火勢)를 높여 온 세계를 태워 그리스도의 왕국을 건설하자”고 부르짖었다. 그리스도 왕국이 조선에 임할 때 주께서 크고 비밀한 역사를 만들어 주실 것이라 믿었다. 1935년 ‘영과 전리’라는 잡지에 실린 <하나님이여 조선을 구원하옵소서>라는 시에서 또 다른 익명의 시인은 “오직 당신의 권능이 이 백성을 구할 수 있으니 이적(異蹟)을 행하옵소서, 조선을 정복(征服)해 달라”고 외쳤다.
  
  슬프다. 애곡할 일이다. 1938년 9월9일 한국교회는 평양 서문밖교회에서 신사참배를 결의하며 태양신에 굴복했다. 대(大)부흥이 일어났던 평양에서 大반역이 시작됐다. 공교롭게도 10년 뒤인 1948년 9월9일 같은 도시 평양에서 북한정권이 수립됐다. 우상 숭배의 결과, 더 악한 우상 숭배가 시작된 셈이다.
  
  빛은 완전히 꺼지지 않았다. 신사참배 반대운동 과정에서 50여 명의 교역자자 순교했고 200여 교회들이 폐쇄됐다. 1940년 9월20일 새벽 ‘조선기독교 일제소탕작전’으로 주기철 목사를 비롯한 조용학·최봉석·최상민 목사 등이 구속되고 순교했다. 주기철 목사의 전기집 ‘진달래 필 때 가버린 사람’ 중 일부는 이렇다. “내가 예수님을 위하여 마땅히 겪어야 할 핍박을 피한다면 장차 주님 앞에 설 때 내가 어떻게 주님의 낯을 대할 수 있을까. 주님께서 나에게 물으시면 무엇이라고 대답할까. 너는 나의 이름으로 기쁨과 즐거움을 맛보았는데 나의 고난의 잔은 어디다 두었느냐 그 고난의 잔을 마시지 않고 어떻게 내게 왔느냐 내가 너에게 물려준 십자가는 어디에 벗어 두었냐고 물으시면 난 무엇이라고 대답할 것인가”
  
  <“나는 당신들과 함께 죽겠습니다” 이스라엘 선교사의 고백>
  
  6·25사변은 순교의 피를 땅에 뿌린 또 다른 잔혹극이었다. 북한이 남침한 3개월 동안 파괴된 교회는 470여 개, 808동에 달한다(최광석 前김일성대학 교수 증언). 공식적 통계에 따르면, 순교 또는 납치된 교역자는 목사 540여 명, 천주교 신부·수녀 182명 등 수백 명에 달한다. ‘사랑의 원자탄’ 손양원 목사는 1950년 9월28일 공산군에 사살했다. 당시의 기록은 참혹하다. 북한군은 황해동 봉산 계동교회 신도 175명을 예배당에서 태워 죽였다. 전북 옥구군 미(米)면 원당교회 교인 73명 학살, 전남 영광군 염산교회 교인 77명 학살, 영광군 아월교회 교인 65명 학살, 충남 논산 병촌교회 학살 등 일반 교인의 순교는 셀 수 없다. 사회주의자들이 보기엔 ‘종교는 아편’이요, 북한의 수립을 철저히 반대한 세력도 교회였기 때문이다.
  
  지금도 한국인의 순교행전은 계속된다. 뽑아도, 뽑아도, 뽑히지 않고 오히려 남한의 타락한 교회를 위해 기도하는 북한 지하교인들. 172개국에 파송된 27,205명(2016년 12월 현재 파송 선교사)의 선교사들. 도서산간 곳곳에서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주를 위해 살다 가는 이들. 전쟁의 먹구름 짙은 이스라엘의 한 선교사는 ‘위험하니 돌아가라’는 유대인 친구의 말에 이렇게 답한다. “나는 당신들과 함께 죽겠습니다. 하루라도 당신들의 구원을 위해 살다 가겠습니다.” 미국 장로회 보고서 제목에 나오듯 ‘야산의 들불(wild-fire)’처럼 번졌던 한반도 복음의 불길은 사막에 강을 내고 광야에 길을 내며 천박한 지상에 놀라운 하나님 나라를 세워간다.
  
  전쟁과 적화(赤化)의 공포가 있지만 두려워하지 말 것이다. 대한민국은 망하지 않는다. 망할 것 같은 위기 속에 다시 일어설 것이다. 하나님의 언약과 신이 여전히 이 땅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그 언약을 기억하고 기도하며 선포하는 자들이 일어날 때 대한민국은 다시 일어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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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02일 14시4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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