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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유엔 연설 후··· 문재인 대통령에게 김정은은 악(惡)인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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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9일 유엔 총회에서 연설하고 있다./동영상 갭쳐.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UN총회에서 한 연설을 보면서, 필자는 얼굴이 화끈거리는 느낌을 받았다. 김정은의 핵 인질로 전락한 시점에서 우리나라 대통령이 세계를 향해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해야 할 말들이 미국 대통령의 입을 통해 나왔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연설에서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불량체제로 구성된 작은 집단’이라고 표현했다. 이는 우리 헌법이 북한 지도부를 불법 반역집단으로 규정한 것과 정확하게 궤를 같이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한 김정은을 ‘로켓맨’이라고 불렀는데, 지상 최악의 독재자이자 민족반역자에게 ‘국방위원장’이라고 꼬박꼬박 존칭을 붙이는 우리나라 정치 지도자들과 언론과 사뭇 대비되는 모습이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 정권을 악으로 규정하며, 이 사악한 정권으로부터 해방해야 할 북한 주민들을 정확하게 구분해서 이야기했다. 그는 “만약 올바른 다수가 사악한 소수에 맞서 싸우지 않는다면 악이 승리하고, 올바른 사람들과 국가가 역사의 구경꾼에 안주한다면 파괴의 세력은 권력과 힘을 쥐게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사악한 북한 정권에 희생된 사람들과 타락한 정권의 사례를 하나씩 열거했다.
 
반면 우리나라 대통령들이 그동안 해온 광복절 경축사나 국경일 연설은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과 너무나 대조적이었다. 김대중 정부 이후 우리 대통령들의 연설에는 선악의 개념도 없고, 피아의 구별도 모호했다. 연설문은 그저 ‘평화’, ‘번영’, ‘화해’ ‘협력’, ‘민족공영’ 같은 추상적이면서 공허한 말 잔치로 채워졌다.
 
우리는 우리 대통령의 입을 통해 북한 정권이 저질러온 수많은 악행을 상기시켜 독재자의 등에 식은땀이 나게 하거나, 북한 주민들을 기필코 독재에서 벗어나게 해주겠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거나, 노예상태에서 신음하는 그들의 처지를 진심으로 동정하는 말이 나온 경우를 들어본 적이 없다. 우리가 이 민족사의 운명을 건 역사의 대결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신념을 보여주거나, 자유민주 체제로 반드시 통일을 이루겠다는 결의를 다지는 지도자도 없었다.
 
관광을 간 자국민이 총을 맞아 죽어도, 자국민이 납치를 당해도, 핵실험을 해도, 미사일을 날려도, 영해를 지키던 군함이 어뢰에 폭침을 당해도, 연평도에 포탄이 쏟아져도 우리 국민들은 지도자가 분루(憤淚)를 삼키는 모습을 본 적이 없고, 결의를 다지는 피 끓는 호소를 하는 것도 들어본 적이 없다. 그러는 사이 안보의식은 강 건너 불구경하는 수준이 되었고, 독재자의 민족적 양심이나 선의(善意)에 기대어 평화를 애걸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까지 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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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남북정상회담차 방북중인 노무현 대통령이 만수대 의사당을 찾아 방명록에 남긴글. / 청와대 사진기자단

 
노무현 남포 서해갑문 방명록, '인민은 위대하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온 가장 큰 원인은 우리나라의 대통령 스스로 대통령직이 어떤 자리이며, 어떤 역사적 사명과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충분히 인식하지 못하는 데 있다고 본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노 전 대통령은 2007년 10월2일 평양의 만수대의사당을 찾아가 방명록에 ‘인민의 행복이 나오는 인민주권의 전당’이라는 글을 남겼다. 남포 서해갑문을 방문한 자리에서는 ‘인민은 위대하다’라는 글을 남겼다. 
 
우리는 남과 북이 이념을 놓고 동족상잔의 전쟁을 벌인 나라다. 이념 때문에 피를 나눈 부모·형제가 서로 죽고 죽인 전쟁을 벌인 것이다. 북한은 국호에 ‘인민’이란 단어를 집어넣었고, 김일성은 바로 ‘인민’이라는 이름으로 전쟁을 일으켰다.
 
전쟁 후 김일성-김정일 부자(父子)가 북한을 세계에 유례가 없는 악랄한 독재국가로 만들고, 주민을 노예상태로 만들면서 갖다 붙인 구실도 바로 ‘인민을 위한다’는 한 가지 명분 때문이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 때문에 남한에서는 ‘인민’이란 단어 사용에 대해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었다. 분단상황에서 ‘인민’이란 단어는 이 말이 본래 가진 국어적 의미를 넘어서 이념을 내포한 말이 되었기 때문이다.
 
노 전 대통령은 방북 당시 개인 신분이 아니라, 국민을 대표하고, 대한민국의 헌법과 대한민국이 추구하는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수호해야 할 대통령의 신분이었다. 이런 대한민국 대통령이 북한의 독재자 앞에서 ‘인민의 행복’ 운운하는 글을 방명록에 남긴 것은 개인의 이념과 신념의 문제 차원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대통령으로서 지위에 대한 자각이 없었고, 역사적 사명감과 인식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약 노 전 대통령이 제대로 된 역사인식을 가지고 있었다면 그는 환영 나온 북한 주민들의 얼굴에서 “제발 우리를 빨리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는 처절한 절규를 읽으며 입술을 깨물고 다짐했어야 했다. 그가 평소 자신의 막중한 지위와 연계해서 독재에 신음하는 북한 주민의 고통에 대해서 한번이라도 생각해 보았다면 만수대 의사당에서 ‘인민 행복이 나오는 전당’이라는 양심에 반하는 거짓말은 절대로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김정일의 노예나 다름없는 북한 주민들에게 주권이 있는 듯이 이야기 했으니, 동포들의 가슴에 잔인한 대못질을 한 것이며, 북한 주민의 처지를 알고도 그런 이야기를 했다면 독재자에게 잘 보이기 위해 양심과 진실을 속인 결과가 되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안보적 위기에 처했지만, 뒤집어 보면 핵 문제를 해결하고 민족사의 비극을 끝낼 기회를 맞고 있는 것일수도 있다. 5000년 역사에서 이만큼 영광스러운 위치에 서 있었던 지도자는 많지 않다. 그가 민족사의 영광스러운 주인공이 될 수 있느냐 없느냐는 오직 하나, 김정은을 악으로 보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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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9월21일 08시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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