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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인들이 가장 많이 착각하는 경제이야기
[ 2021년 09월21일 01시04분 ]
글쓴이
koreainjesus
조회수: 24        
<1>
하나님 일을 열심히 감당하고 계신 목사님들조차 가장 크게 헷갈리는 영역이 바로 경제(經濟) 영역입니다. 경제에 대한 오해는 자본주의에 대한 혐오와 사회주의에 대한 관용 나아가 성경적 토지공유제니 토지공개념(土地公槪念) 또 현재 좌파 성향 정치인들에 대한 지지를 만들어 냅니다. 아주 반공 성향 목사님조차 놀랍게도 좌파적인 주장들을 하는 경우도 많고요.

물론 성경을 보면, 돈과 물질, 부자에 대한 비판이 많이 나오고, 자본주의 역시 성경적이지 않은 것처럼 느껴지는 구절들도 있습니다. 기독교 쪽 사회주의자들이 가장 많이 인용하는 사도행전 4장32절 말씀 외에도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라는 디모데전서 6장10절 말씀도 그렇고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말라는 마태복음 6장 말씀도 그렇습니다.

‘약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쉽다’는 마가복음 10장25절 말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마치 돈 버는 것은 성경적이지 않은 것처럼 느껴질 여지가 있습니다.

물론 말씀을 조금만 더 묵상해 본다면, 일부 요절을 끌어다 자신의 이념을 정당화·합리화하는 이런 문자적 해석은 잘못된 것임이 분별이 됩니다.  

제가 인용한 말씀은, 하나님의 종이 아니라 돈의 종이 돼 집착하는 것을 경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복(福)과 저주(咀呪)를 인간에게 선택케 하셨고 마태복음 6장33절에 나오듯 그의 나라와 그 나라의 의를 구할 때 먹고 입고 마실 것, 복도 주실 것임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시장을 통한 거래와 그를 통해 얻게 된 소유(所有), 또 그 소유의 상속(相續)은 하나님이 피조세계에 허락하신 자연 질서, 자생적 질서입니다.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한 사도행전 4장32절 역시 성령 받은 특정한 공동체, 특정한 시기에 허락된 것입니다. 성령 받지 않은 타락한 인간이 모여 사는 국가공동체에 적용되는 것이 아닙니다. 무엇보다 성경을 왜곡한 사회주의가 만들어 낸 실제의 세상은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라 지식인 엘리트 집단이 파괴와 살육을 일삼고 교회를 해체한 지상지옥이었을 뿐입니다.
 
“믿는 무리가 한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사도행전 4:32)”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디모데전서 6:10)”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마 6:19-21. 24)”

“약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신대(마가복음 10:25)”

그럼에도 머리에 오염된 먹물이 들어간 지식인 그리고 도덕적 허영에 찬 종교인, 실은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돈을 번 적이 없는 관념론 집단은 경제에 대해 무지하고 무감각하기 십상입니다. 그래서 엉뚱한 이야기 실은 사회주의에 가까운 공상을 설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가 몇 명의 유명한 철학자들을 인용해 봅니다.

플라톤의 ‘공화국(The Republic)’, 통상 ‘국가’로 번역된 이 책을 보면 ‘사람들은 돈벌이에 가치를 부여할수록 미덕으로부터 등을 돌리게 돼 있다’는 소크라테스의 말이 나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도 ‘시민들은 노예나 상인처럼 살면 안 된다. 그런 삶은 천박하다’고 말했습니다.

뭐. 돈에 집착하는 천박한 삶을 살아선 안 되고 미덕을 쫓으며 살아야 하지만요. 이런 이들이 생계를 꾸리는 생산적 활동을 가벼이 여기는 것은 분명합니다. 실제로 플라톤은 아테네 명문 귀족 출신이고 아리스토텔레스 역시 아버지가 궁정 의사였고 왕자의 소꿉친구로 자라났죠. 먹고 사는 데 지장이 없으니 먹고 사는 걸 우습게 여긴 것입니다.

중세 천 년 간은 이런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상업을 천하게 여기는 사상이 더 견고하게 지배했던 때입니다. 중세 교부들은 “부(富)의 총량이 정해져 있으며 한쪽이 이익이 되면 다른 쪽은 손해를 본다.”고 확신했죠. 신국론(the City of God)을 쓴 위대한 성직자, 아우구스티누스(354년 ~ 430)조차 경제에 대해선 개념이 없었습니다.

‘한 사람이 잃어버리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얻을 리 없다’는 게 그의 경제관이었습니다. 즉 누군가 열심히 일하고 있다면 그는 다름 사람의 재산을 탈취하고 있다는 식입니다. 그는 신국론에서 물질적 풍요가 사치와 탐욕을 낳으니 생산과 번영 자체를 부정해 버리죠. 그리고 열심히 돈만 버는 유대인들을 경멸하며 반유대주의(Anti Semitism)의 논리적 근거를 만들어 줍니다. 절제·청빈·겸손·금욕을 강조하는 건 좋은데 좀 지나쳐 버리는 것이죠.

경건한 그리스도인들, 특히 가진 게 별로 없는 젊은 층은 이런 부분에서 헷갈리기 시작합니다. 아우구스티누스가 말한 것처럼 절제·청빈·겸손·금욕은 맞는 말입니다. 사치와 탐욕도 위엣 것이 아닌 땅의 것을 쫓는 반성경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물질과 육체, 또 육체가 물질을 열심히 활용해 또 다른 물질을 만드는 풍요와 번영 자체가 악(惡)이 될 순 없습니다. 육체와 물질을 악으로 보는 것은 흔히 이원론으로 불리는 이단적인 주장이죠.

물질·육체·풍요·번영은 중립적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하나님 영광을 위해 써야 합니다. 헌데 그 자체를 악으로 보다보니 중세시대는 위선과 가식의 천년이 되고 맙니다. 힘 있는 교황과 그 패거리는 철저하게 부를 독식하고, 일반 주민은 농노가 돼버린 시대 말입니다. 200만 명을 종교재판으로 학살하고 50만 명의 마녀를 사냥하며 면죄부를 팔아먹던 시대 말입니다.

지식인·종교인 집단이 도덕과 철학, 그럴싸한 이데올로기를 말하면서 백성들 피를 빨던 그럴싸한 암흑기는 성리학이 지배했던 조선왕조 500년, 그리고 지금 대한민국에서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15세기 종교개혁은 그 거짓과 미혹에 대한 저항이었습니다. 돈, 물질, 육체가 악이 아니라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써야 한다는 것이죠.
 
물론 루터나 칼뱅이 현대 경제학 개념이 정리돼 있지는 않았을 겁니다. 칼뱅도 ‘돈은 스스로 증식할 수 없다’는 말을 하기도 했었죠. 그러나 솔라스크립투라, ‘오직 성경’의 말씀으로 돌아갔던 종교개혁은 죄인인 우리 안에 성령이 오시어, 의롭다 칭하여 주시고, 우리로 하여금 ‘이 세대를 본받지 않고 주님의 착한 일을 이루게 하심을’ 말씀을 통해 발견케 됩니다.

성속(聖俗)의 중세적 2분법은 거부되고요. 속된 것 즉 세속 영역의 돈·물질·육체도 주님의 영광을 위해 쓰여야 한다는 성경적 결론을 이끌어 냅니다. 성령께서 우리 심령 안에 오시어 착한 일을 시작하셨기에 모든 이들은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루터는 그 사명을 vocatio, 칼뱅은 calling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하지 아니하리라(베드로후서 1:10) 일반 대중, 일반 성도들은 각자의 환경에서 주님의 부르심을 발견하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돈·물질·육체는 더 이상 악이 아니다!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벌어서 최대한 주님의 영광을 위해 써야 한다! 이것이 종교개혁의 주요한 정신 중 한가지였죠.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립보서 2:13)” 그렇습니다. 성령 받은 모든 이는 각자의 삶 속에서 주님의 사명, vocatio, calling이 있습니다. 그러니 최선을 다해 일하고 최선을 다해 자녀를 길러서 그를 통해 얻어낸 번영, 성공, 형통, 축복은 쾌락과 사치가 아닌 주님의 일을 위해 다시 쓰는 것이 맞습니다.

중세시대 천년은 그렇게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벌어서 열심히 주님의 일을 하는 선교시대가 열리며 끝이 납니다. 이런 마음자세는 또한 근대자본주의 정신적 토대가 되기도 하고요. 경제 이야기를 하다 보니 이야기가 길어져서 앞부분은 여기까지 말씀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요약하자면, 사회주의라는 것은 반(反)성경적 주장임에도 중세시대는 사실상 사회주의적 교부철학이 지배했습니다. 지식인·종교인 독재에 악용된 것이죠. 종교개혁은 말씀으로 돌아가서 이런 위선과 거짓의 틀을 깨버린 것입니다. 아마도 종말에는 다시 지식인·종교인 독재가 이뤄져 사회주의가 강제될 것입니다. 그때 짐승의 표 666이 없이는 매매가 안 될 것이고요. 그러나 오직 하나님을 아는 백성들은 강하여 용맹을 발하여 지혜로운 자가 되어 많은 이들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해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이들은 이 사회주의의 본질을 여러 각도에서 통찰하고 하나님의 부르심, vocatio, calling을 이루기 위해 더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으로 우리 안의 모든 인본주의 이론을 파하여 주옵소서.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시어 주님이 이 땅에 저희를 부르신 사명 이루는 자들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 생각 안의 잡다한 세상의 논리가 예수 앞에 온전히 복종될 때에 모든 복종치 않는 것들을 주님이 벌하여 주실 것을 믿습니다. 북한의 우상숭배 체제를 정리해 주시고 선교의 길을 열어주실 것을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  
앞에 이어 경제 이야기를 더 드려보려고 합니다. 중세의 사회주의적 위선의 철학을 종교개혁은 부수고 근대 자본주의의 길을 열었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종교개혁의 핵심적 인물인 칼뱅은 이런 성경의 원리를 실천을 합니다. 그는 우선 우리가 흔히 말하는 자본주의, 즉 시장경제라는 하드웨어를 긍정합니다. “상업과 무역은 하나님이 인간 사회의 조화로운 봉사를 위해 세우신 자연 질서”라고 표현을 했었죠.

이건 완전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입니다. 중세에는 누군가 돈을 벌면 다른 누군가 돈을 뺏긴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러나 칼뱅은 부의 축적(蓄積) 자체를 긍정하며 그것이 성경적인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당시 칼뱅이 활동한 제네바에는 프랑스의 신교도 박해를 피해 이주한 이른바 위그노들이 많았습니다. 위그노는 어원이 불확실합니다만, 어쨌든 프랑스 신교도를 가리키는 말인데요.

역시 프랑스 출신으로 1541년 제네바 시장에 당선된 칼뱅은 당시 제네바에 모여 있던 위그노파 금속 세공업자들에게 회중시계 등 각종 시계를 만들도록 권유했습니다. 지금으로 따지면, 박정희 대통령이 1960년대 ‘마법의 돌’로 불리던 반도체 개발을 독려한 것 같은 것입니다. 요컨대 칼뱅은 성경에 입각해 스위스를 근대화시킨 것입니다.

스위스 시계 기술이 발전하자 유럽에서는 내로라하는 장인들이 제네바에 몰려듭니다. 1780년 당시 제네바 수공업조합(길드)에 등록된 장인들만 5만 명에 달했죠. 칼뱅은 같은 맥락에서 중세의 수도원적 재산공동체에 반대합니다. 실제로 칼뱅은 중세로 다시 돌아가자는 구교도들, 실은 그럴싸한 평등의 명분을 앞세워 다수를 빈곤에 몰아넣는 사실상의 사회주의 논리들과 엄청나게 싸웠습니다.

물론 그땐 사회주의가 이론화되지는 않았지만, 대중을 모두 다 가난하게 만들어 버리고 지식인이 평등이라는 그럴싸한 명분을 앞세워 독재를 하는 게 사회주의 본질이죠. 인간이 선지자적으로 외치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심판자가 돼 불의한 자들을 심판하고 응징하고 심지어 학살하는 것입니다. 이런 면은 중세나 20세기 공산주의, 조선시대도 유사합니다.

총신대 교수가 쓰신 ‘칼뱅의 자유사상 이론과 실제’라는 책을 보면, 이런 허망한 관념론과 칼뱅이 얼마나 열심히 싸웠는지 나옵니다. 칼뱅은 요즘 식으로 기독교사회주의자들이 흔히 인용하는 사도행전 4장32절 ‘네 것 내 것 없이 같이 쓰는’ 초대교회는 매우 일시적 현상이었음을 지적했다고 합니다. 실례로 빌레몬도 가산과 노예를 안 팔았다고 지적하고요.

역시 기독교사회주의자들이 자주 인용하는 누가의 공동체 역시 각자가 가산을 꾸리고 재물은 별도 관리했다는 사실을 칼뱅은 말하죠. ‘부자에게 소유를 다 팔라’고 하신 마태복음 19장21절 말씀도요. 칼뱅은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일반적 말씀이 아니라 그 청년에게 적용되는 말씀이라고 해설을 합니다. 지금 식으로 해석하면요. 성경은 사회주의를 말하지 않는다! 예수님은 사회주의자가 아니었다! 이런 말을 한 것이죠.

그러나 여기서 놓쳐선 안 되는 포인트가 있습니다. 칼뱅은 하나님의 정의와 인간의 정의가 갈등하고, 그리스도인의 자유와 인간의 자유가 충돌하며, 자유의지와 노예의지가 공존한다는 것을 지적합니다. 즉 타락한 인간은 필연적으로 악해지고 부패한 이성은 하나님과 구원의 지식에 이를 수 없다는 것입니다. 타락한 본성은 회복할 능력이 없어 오직 은총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즉 경제적 자유를 선포했지만 그것을 남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부의 축적은 옳지만 부의 방종, 과시, 남용은 문제라는 것입니다. 부정·투기·매점매석은 도덕적 과오이자 신성모독이라고 말합니다. 그렇다고 국가가 개인이 번 돈을 강제로 다 뜯어가는 것이 아니고요. 이 죄악된 본성에서 벗어나기 위해 근검·절약·청빈하고 번 돈은 주님의 영광을 위해 쓰라고 합니다.

역시 지금 식으로 풀어 말하면요. 시장경제는 옳다. 그러나 부패·타락·향락·음란에 빠져선 안 된다. 타락한 인간은 그렇게 가기 쉬우니 근검·절약·청빈하게 살아라. 그 풍요와 번영을 주님의 일을 위해 써라. 선교하는 데 써라. 다음세대·미래세대 양성을 위해 써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써라.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벌어서 열심히 주의 일을 해라! 이겁니다.

19세기 막스 베버는 이것을 자본주의 정신(精神), 프로테스탄트 윤리라고 명합니다. 칼빈교도이자 기업가 가문 출신인 베버는 자본주의의 외형적 요소와 함께 내면적 요소가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죠. 그 유명한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의 표현을 빌자 면요. “프로테스탄트는 잘 먹고 지내려는 것이고 카톨릭시즘은 금욕·초세속성으로 누워서 지내려는 것이다”

“직업은 하나의 사명, 독일어로 beruf다. 하나님의 콜링이며 하나님이 예정(豫定)이 있다. 그러나 부(富)는 나태와 향락, 유희를 뜻하지 않는다. 자본주의에는 정신이 있다. 바로 에토스, 근면·성실·검약하는 직업윤리다. 그것이 없다면 천민자본주의(Parial Kapitalismus)가 된다. 유대적·정치적·투기적 자본주의다.”

“그러므로 가능한 많이 벌고 가능한 많이 절약하고 가능한 많이 희사하라. 그것이 하나님의 은총이다”

흔히 한국의 경제적 자유주의자들은 자본주의 자체를 지켜야 한다고 말하곤 합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서 자본주의는 두 가지로 구성이 됩니다. 하나는 자유로운 시장이라는 하드웨어이고 다른 하나는 자유로운 시장을 통해 얻어낸 물질적 축복을 쾌락과 사치가 아니라 주님을 위해 쓰는 또 어려운 이웃을 위해 쓰는 기독교 정신, 소프트웨어입니다.

동양에서 자본주의가 실패하고 사회주의가 휩쓸었던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입니다. 자본주의의 정신적 요소인 기독교 정신이 빈약한 탓이죠. 그런 면에서 한국은 특별한 하나님 은혜가 있었던 곳입니다. 우선 초대대통령인 이승만 박사가 기독교 정신에 무장돼 있었고 군목(군대목사)·경목(경찰목사)제도 도입·기독교 방송국 설립 등 국가 차원의 기독교 지원이 있었습니다.

<1947년 서울중앙방송 통한 선교방송 허용. 1954년 기독교방송국·1956년 극동방송 설립. 국기우상화 반대운동 통해 국기배례를 ‘주목례’로 변경. 군목(군대목사)·경목(경찰목사)제도 도입<불교의 군승제도는 1968년 시행> 기독교청년회(YMCA) 등 기독교단체에 막대한 후원. 해방 직후 남한 전체 인구의 2~3%에 불과했던 기독교 인구가 1960년엔 7.5%로 비약적인 성장>

또 북한에서 공산주의를 경험하고 성도들과 심지어 가족마저 북한 땅에 두고 왔던 월남자들이 남한에서 교회 건립을 주도했고, 결정적으로 한미동맹을 통해 미국에서 기독교 문명이 꾸준히 전해집니다. 강원도 철원에 가면 대한수도원이라는 큰 기도원이 있습니다. 이미 오래 전에 소천하신 전진 원장님이라는 분이 세우신 곳인데요. 6·25사변 후 찢어지게 가난했던 시절 세상에서 가장 버림받은 것 같은 여성들이 모여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했던 곳입니다.

헌데 그런 곳이 참 많았습니다. 그래서 근대화 시대에는요. 기도회를 한다 치면 구국기도회, 기도원을 연다 치면 구국기도원, 대규모 광장 구국기도 등 지금보다 훨씬 어렵던 시절에도요. 단순한 현세적 기복종교 이전에 나라와 민족을 위한 기도, 이타적 기독교 정신이 있었습니다.  

‘한강의 기적’은 말입니다. 단순한 자유 시장경제라는 유형의 요소, 물질적 요소 외에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는 이 무형의 요소, 정신적 요소 위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즉 대한민국도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는 교회들이 있었기에 산업화에 성공했단 말입니다. 그래서 실제로 교회의 성장과 함께 국가가 성장하면서 그 에너지는 세계 선교의 에너지로 발산되기 시작합니다.

헌데 80년대를 지나면서요. 어마어마한 축복 속에 넋이 나가고 맙니다. 사실 복 받은 세대가 자녀들 양육을 주님의 뜻대로 하지 못한 것이죠. 586운동권이라는 반성경적 괴물세대를 만들어 냅니다. 그리고 다시 예전의 뿌리 깊은 저주가 살아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지독한 이기심 속에서 소프트웨어가 없는 하드웨어, 정신 나간 자본주의, 사랑 없는 자본주의 소위 천민자본주의가 돼가는 셈입니다.

절대다수 교회들은 죽어 가는 북한 동족들을 구원할 생각을 안 하고, 심지어 나라 지키다 잡혀간 8만2천명의 국군포로, 10만 여명의 전시납북자·542명의 전후납북자, 수용소에 갇혀 있는 자국민 선교사들을 살려낼 생각도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는 자본주의와 그 정치적 뼈대인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겠다고 말한다면, 소프트웨어 없는 하드웨어, 깡통 컴퓨터를 지키자는 것입니다. 지독한 이기심, 겉 사람의 정욕과 탐심을 죽이고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죽이고, 국민마저 성도마저 저버리는 국가적 죄악, 민족적 죄악, 교회적 죄악을 회개해서 정신을 되찾아야 합니다.

“주의 권능의 날에 주의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하니 새벽 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오는도다(시편 110:3)” 하나님. 주의 권능의 날, 예수 다시 오실 날이 머지 않았음을 저희들이 보고 듣고 느끼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을 것이라는 주님 말씀처럼, 저희로 먼저 주의 이름을 부르며 깨어 있을 때도 잠들 때도, 뛸 때도 걸을 때도, 기쁠 때도 슬플 때도, 일할 때도 놀 때도 예수의 이름을 부르게 하시고 우리 안의 기질·성질·체질, 자아를 죽이며 주님 거룩하신 것처럼 거룩해지게 하옵소서.

그렇게 십자가, 사명 지며 즐거이 주님의 부르심에 헌신하게 하옵시고, 우리의 다음세대, 아이들이 패역하고 반역적인 이 세대를 본받지 않고 새벽이슬처럼 주께 나올 수 있도록 저희로 일하게 하옵소서. 주님의 영을 부어주시어 저희로 복음으로 통일된 선교하는 대한민국을 보게 하시고 자녀들은 예언하며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늙은이들은 꿈을 꾸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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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젠더이론 정리 koreainjesus 2021.09.2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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